서울 H대 신방과 4학년 장모(25)씨는 대학 내내 마케팅, 광고 관련 취업을 준비해왔다. 평점 4.0, 토익 900점에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카피라이터와 광고기획자 과정도 밟았다. 그러나 결과는 21전 20패. 최근 지원한 모 기업 사내방송국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이쪽 분야는 채용 공고가 나도 거의 경력직이고, 신입 모집은 1, 2명밖에 안됩니다. 경력직 선배들과 경쟁을 하니 밀릴 수밖에 없죠." 장씨는 취업을 못하고 내년 2월 졸업하게 되면 학자금 대출 이자 갚을 길이 가장 막막하다. 외환위기 때 가게를 하던 부모님이 빚을 지면서 대학 등록금 마련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다 대기업으로 돌아선 S여대 4학년 신모(22)씨는 "공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면접에 가면 회사 다니다 신입으로 지원한 사람이 같은 조에 꼭 한 명씩 있다"며 "면접관의 질문이 그 사람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솔직히 나머지 지원자는 기분이 상한다"고 말했다. 실제 신씨가 같이 공부했던 공기업 준비 스터디모임 6명 가운데 지난 달 한국전력에 합격한 사람은 모 중견기업에 다니다 그만 둔 32세의 남자 선배가 유일했다.
그렇다면 30대는 어떤 생각일까. 3년 전 대한주택공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주모(34)씨. 중견기업에서 근무한 2년 경력을 포기하고 이곳에 입사했다. "야근이 계속되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도 너무 부족했고, 무엇보다 미래가 불안했다"며 "2년의 사회경험이 밑천이 돼 다른 동기들보다 훨씬 실력을 인정 받고 있고,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2년의 희생은 충분히 만회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 '트라우마 세대'와 30대 'IMF 세대'간 첨예한 일자리 경쟁의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경력직 채용의 급증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신규 대졸자를 흡수해 양성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검증된 사람을 조달해 쓰는 추세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업원 100인 이상 회원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입직 채용은 2005년 71.6%에서 지난해 63.5%로 줄어든 반면, 경력직 채용은 28.4%에서 36.5%로 증가했다.
헤드헌팅업체인 커리어케어 진국영 전무는 "대규모 공채 시대는 갔다고 봐야 한다"며 "양보다 스피드, 통일된 기업문화보다 개인의 창의력이 더 중요해진 경영환경 때문에 경력직 선호 현상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경기가 어려울수록 기업들은 교육하는 데만 1~2년 걸리는 신입 2,3명 뽑는 비용으로 경력 1명을 들여와 곧바로 실무에 투입하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경력직 채용의 급증이 아니라도, '신입공채 연령제한 폐지'나 '경력무관 공채'는 경력과 신입이 대결하는 또 다른 통로이다. 현재 대부분의 공기업과 대기업이 연령제한을 폐지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지난해 51명의 신입공채 최종선발자 가운데 30대 10명, 40대 1명 등 30대 이상이 21%에 달했고, 한국도로공사는 114명 가운데 32명(28%)을 30대로 뽑았다.
경력무관 공채도 급증하고 있다. 취업전문업체인 잡코리아가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신입직 모집은 9.0%, 경력직 모집은 33.5%였고, 경력무관은 57.5%에 달했다. 경력무관은 입사 지원을 할 때 경력의 유무를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신입직과 경력직이 똑 같은 조건으로 입사 경쟁을 한다는 얘기이다.
헤드헌팅업체인 HR맨파워 이영걸 전무는 "연령제한 폐지든, 경력무관 공채이든 20대와 30대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공채 면접을 하고 경쟁시킨다는 것은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30대 IMF 세대가 20대 트라우마 세대의 일자리를 뺏는 불행한 경쟁은 고용 없는 성장이 구조화하고, 경기침체로 일자리도 부족하며, 더 근본적으로는 고용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혜원 연구위원은 "괜찮은 일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두 세대가 갈등을 빚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력의 외부조달이 내부양성을 대체하고, 신입과 경력이 똑같이 경쟁하며, 그래서 경력이 신입을 구축(驅逐)하는 고용구조의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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