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블로거가 자신의 사이트에 최근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는 인기 미국 드라마를 총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CSI 시리즈 3종, 고스트 앤 크라임, 하우스, 라스베가스, 프리즌 브레이크, 위기의 주부들 등의 드라마와 도전 수퍼모델, 프로젝트 런어웨이 같은 버라이어티 쇼가 그것들이다.
주로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서 볼 수 있지만 이 중 특히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지상파에서도 질세라 틀어댄다. 하루 24시간 TV를 틀어놓고 미드만 본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영어 듣기에 질려, 자막 보기에 눈이 피로해서 국내 방송이나 한 번 볼까 하면 이미 오래 전에 봤던 몇몇 특정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들뿐이다.
혹은 새로 제작한 것들이라도 미국 프로그램과 비슷하거나 포맷을 따라 한 프로그램들이 전부다. 스포츠 채널을 통해서 박지성이나 추신수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구색 맞추기라고 만족해야 하나.
도대체 우리 방송은 어떤가. 지상파 방송들은 드라마 제작을 취소하거나, 편성 시간을 축소한다는 소식이다. 공영, 민영방송 모두 스스로 올려놓은 연예인들의 출연료에 두손 두발 다 들었기 때문이다.
대형 프로그램공급자(PP)들도 미국 프로그램들을 남대문시장에서 보따리 장사 물건 떼오듯 가져와 대고 있다. 이 와중에 환율마저 엄청나게 올랐으니 이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몇년째 같은 프로그램만 틀어대는 군소 PP들이나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독립제작사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요란하게 시작한 IPTV 주체는 콘텐츠 시장에 투자하기는커녕 지상파나 인기 PP의 채널을 주지 않으면 사업을 접겠다는 협박이나 일삼는다. 미국처럼 국내 시장이 큰 것도,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원도 부족하여 그저 제 살을 뜯어먹는 형국이다. 지상파는 이들 틈에서 왕초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으로 눈을 한 번 돌려보자. 최고의 공영방송인 BBC는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회사 규모를 줄이고(a smaller BBC), 품질에 초점을 맞추며(focused on quality),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자(ready for digital)는 3대 과제를 제시했다.
대(對)시청자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제 3세대 서비스로 온 디맨드 서비스를 강화하는, 소위 기존 방송개념의 초월(Beyond Broadcast)이라는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택과 집중, 즉 몇몇 TV장르에서는 제작량을 줄여서라도 프로그램 품질을 높여 공공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이제 우리의 지상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방송법, 신문법 등 새 정부 출범 후 법 제도적 변화에 따른 갈등 사항은 부차적인 문제다. 정권이 교체되면 요동치는, 신문 방송 등 기존 미디어에 대한 법이나 정책 변화를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 예상되었던 일들이다.
정치야 정치인들 바뀔 때까지 그럭저럭 버티면 되었다. 중요한 문제는 사회가 변하고, 기술이 변하고, 시청자 자체가 변했다는 데 있다. 주 시청자 세대가 변하고 있고, 의식이나 시청 행태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태도가 뿌리부터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면초가에 진퇴양난이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이 디지털 다매체 시대에 과연 지상파 방송이 준비해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말이다. 정말 이 나라 방송의 미래가 걱정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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