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할 때가 잦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회의도 있고, 이른바 우수 도서 선정 회의도 있으며, 행사 기획 회의, 방송 프로그램 방향에 관한 회의도 있다. 회의 주제나 성격과 상관없이, 회의 참석자들의 유형 가운데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침묵형이다.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다가 회의 진행자가 호명하며 의견을 물으면 마지못해 몇 마디 말을 하고 침묵 모드로 복귀한다. 침묵형의 반대쪽에는 떠버리형이 있다. 노래방에서 한 번 잡은 마이크를 좀처럼 남에게 넘기지 않는 사람과 비슷하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서 마이크를 독점하는 것과 비슷하게, 실속 있는 얘기는 별로 없으면서 회의 시간을 축 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회의 진행자가 이 경우에 해당하면 목불인견이다.
다음으로 불평불만형이다. 일종의 의사진행 발언에 해당하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회의 주제나 회의 자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남의 의견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트집이다. 그럴 거면 애당초 회의에 왜 참석했는지 의문이 든다. 회의 진행을 방해하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편승형 또는 묻어가는 형이 있다. 자기 의견은 도무지 없고 다른 사람 의견에 대해 몇 마디 부연만 한다. 추임새 형이라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심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네 가지 유형의 참석자가 고루 포진한 최악의 회의를 경험할 때도 있었다. 실속 없이 떠버리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불평만 늘어놓고 남의 얘기에 묻어만 가는 참석자들. 지금 돌이켜 봐도 끔찍하다. 회의 시간 내내 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회의 주최 측이 지급하는 회의 참석 사례비를 불우이웃돕기에 쓰는 게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훨씬 더 나았을 법하다. 회의가 정신적 고문이 되지 않게 하는 처방은 뭘까?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니시 히토시는 회의를 의사소통 회의와 의사결정 회의로 나누고, 의사소통 회의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회의를 최소화하고 최적화하려면,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를 줄이거나 없애고 안건에 대한 결정을 목적으로 하는 회의에 주력하라는 것. 이동현 교수(가톨릭대 경영학부)는 회의 안건이 반드시 여러 사람이 모여 해결해야 할 이슈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리라는 사고방식이 문제라는 것. 그러한 회의지상주의 때문에 불필요한 회의가 늘어난다.
한편 메이지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보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회의란 무언가 심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고사항은 최대한 짧게 하거나 아예 심의사항을 먼저 처리하고 보고는 자료를 읽어보는 것으로 대체하는 게 낫다는 것. 대부분 보고회의의 형식을 띠는 정례회의는 없애는 게 낫다. 바쁜 사람들을 어렵사리 모아 놓았다면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회의에 대한 이러한 몇 가지 진단과 처방도 회의 참석자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까지 없애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바람직한 회의 문화 정착도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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