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무선 마우스 좀 구해줘. 지금 쓰고 있는 마우스는 잘 굴러가지 않아서 영 불편해. 사이즈는 작은 걸로 부탁해."
"내겐 MP3 플레이어가 필요해. 요즘 풀터치 스크린으로 디자인된 제품도 많은 것 같던데. 두께는 좀 얇았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가격이 저렴했으면 해. 잘 좀 찾아봐 줘, 도사형."
대구 남구 대명동의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대구광명학교 컴퓨터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또래 아이들에게 둘러 쌓인 한 학생이 빠른 손놀림으로 컴퓨터(PC) 자판을 두드리며 인터넷 검색에 한창이다.
시각장애인 전용 음성 해설 서비스를 듣기 위해 헤드폰을 착용한 것을 빼곤, 영락없는 프로급 실력을 갖춘 인터넷 정보검색사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주인공은 이 학교 고등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정대춘(18ㆍ시각장애 1급)군. 그는 후배와 친구들 사이에서 '인터넷 도사'로 통한다. 인터넷 검색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인 인기 그룹 '소녀시대'의 히트곡과 사진을 구할 때는 물론,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누와 세제 등 생활 필수품을 구입할 때도 동료들은 그의 손을 빌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동정과 외면을 받는데 익숙해진 탓일까. 비록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이지만,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이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드러내 놓고 좋아할 순 없죠.(웃음) 그래도 속으론 친구들 관심이 고마워, 기분이 좋아서 폴딱폴딱 뛰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군요." 인터뷰 초반 어색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린아이 같이 앳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원래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 웃음이 찾아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은 채로 7달 만에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 위로 두 누나를 둔 막둥이로 귀여움을 한껏 받고 자랐지만,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대춘이가 엄마 얼굴을 볼 수 없다며 괴로워할 때마다 몰래 울기도 많이 했지요. 남편이 5년 전에 하늘 나라로 가는 바람에 아빠 사랑도 많이 받질 못했는데…." 힘들었던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 아들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는 김영옥(53)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부터 낙천적이었던 대춘군의 성격은 점차 소심하게 변해갔고 혼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1998년 대구광명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신체적으로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어 잘 어울릴 법도 했지만, 이미 소심하게 변해버린 그가 동료와 교사들에게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부 6학년에 올라간 2003년 4월, 삶의 목표를 다시 쓰게 만든 사건이 그에게 일어났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던 도중, 삼성전자가 시각장애인들의 PC 활용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삼성애니컴'(http://anycom.samsunglove.co.kr)에 접속한 게 계기였다.
이 사이트에선 시각장애인 교사가 직접 나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PC 활용 교육을 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도 정상인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색다른 경험이자 충격이었다.
"다른 장애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시각장애인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잖아요. 장애인 대상의 학교나 학원에서도 일반 선생님들이 훌륭한 강의를 하고 계시지만, 시각장애인이 교육의 주체로 나서니까 '동질감' 공유라는 부분에서 확실히 학습 효과가 달랐어요.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학생들만 느끼는 공통분모라고 할까요. 서로의 눈높이가 같다는 생각에서인지 집중력도 높아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났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전하는 그의 표정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안마사 외에는 뚜렷한 진로를 찾기 힘들어 고민하던 그에게 삶의 새로운 좌표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삼성애니컴'에선 김병호(43ㆍ시각장애 1급) 교사가 '윈도우 운영체제'와 '인터넷 검색' 등 시각장애인 전용 교과목(77개) 강의를 도맡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컴퓨터 경진대회 '삼성애니컴 페스티벌' 정보검색 부분에서 학생부 동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엔 금상을 거머쥐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대춘군은 요즘 자신이 직접 세상과 부딪치며 이런 편견을 불식시켜보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건 생각만해도 좋은 일이잖아요. 저처럼 앞을 볼 수 없는 친구들에게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세상은 살만한 곳이잖아요." 시각장애인용 보조공학기구 없이 혼자 힘으로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교실을 옮겨 가는 대춘군의 뒷모습에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삼성전자는 1995년 '사회봉사단'을 발족한 이래 약 1,500개의 봉사팀을 구성, ▲사회복지 ▲학술문화 ▲국제교류 ▲환경보전 ▲체육진흥 등 5개 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본사를 비롯해 전국 사업장에 8개의 자원봉사센터를 구축하고 전담조직 및 사회복지사를 배치, 임직원들이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히 장애인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97년 집합교육 형태인 '시각장애인 PC교실'을 개설했으며, 2002년 11월엔 온라인 교육 사이트 '삼성애니컴'을 오픈해 검색엔진 활용법 등 PC 관련 교과목을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거주자를 비롯해 PC를 활용하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가입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뇌성마비 어린이들의 재활치료를 위한 재활승마 프로그램과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돼 주는 청각도우미견 양성, 장애인 대학생과 저소득 장애인 가정을 지원하는 '디딤돌 장학회' 등 다양한 장애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도 저소득층 자녀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 학습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한다. 글로벌 기업답게 해외 봉사활동도 활발히 진행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기흥ㆍ화성사업장 임직원들은 96년부터 성금을 보아 베트남과 몽골 등에 학교와 정보기술(IT)센터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엔 중국 장애인연합회와 함께 가난한 백내장 환자 6,000여 명에게 개안(開眼)수술을 해줬다.
중국 41개 지사와 법인이 43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6개 시범 마을을 조성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2005년부터 '애니콜 희망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낙후 지역에 45개 학교를 지어줬으며 2010년까지 모두 100개를 지을 계획이다.
대구=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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