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동호인 체육대회에서 50대 초반의 회원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119구급대를 불렀지만 달려온 구급차에는 심장박동을 전기충격으로 되살릴 제세동기가 없었다. 제세동기가 없으면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계속 해주면서 병원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구급대원이 2명 뿐이었다. 한 명은 운전을 해야 하니 진짜 구급대원은 한 명인 셈이다. 결국 그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합쳐서 구급대로 통칭하는데,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가료하기 위해 제세동기가 따라가는 특수구급대가 1,204대(이하 소방방재청 2007년말 통계 기준), 제세동기가 없는 실버구급대가 97대이다. 제세동기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는 통계가 없다. 응급환자가 아닌데도 119구급대를 불러대는 시민들의 낮은 의식 때문에 상황은 더욱 나쁘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구급대원의 부족이다. 소방방재청 구급대원은 5,556명으로 구급차 당 2명을 태워도 부족해서 85%가 2교대를 한다. 소방인력에 대한 규정에 따라 구급차 당 3명이 타고 3교대를 하려면 6,153명을 충원해야 한다. 이런 인력충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불끄는 소방관은 또 말해 무엇하랴. 큰 화재사건이 나면 과로로 순직하는 소방관들의 기사가 늘 뒤따르면서도 인력충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왜냐? 소방관을 보충하는 프로젝트는 없기 때문이다. 소방관을 대거 보충하면 '어려운 시기에 공무원 충원했다'고 비판을 쏟아부을 무지한 언론도 있다.
기본은 없는데 목적사업은 흥청
기본은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프로젝트에만 열을 쏟는다. 중소기업 살리기에 몇 조, 대학 국제화 프로그램에 몇 백억, 농촌 살리기에 몇 조, 영어 원어민 교사 채용에 몇 백억…프로젝트로 지정된 일에는 뭉텅이 돈이 쏟아진다.
정부가 이러니 사회 전체가 프로젝트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곳곳에 돈이 넘쳐나지만 사회안전망은 후진국이다. 프로젝트라는 것이 실상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 떼어먹는 사람도 많아진다. 환경운동연합 사건도 활동가들 임금은 차상위계층 수준인데 프로젝트 용도로는 뭉치 돈이 들어오니까 간부들이 이리 저리 돌려쓰다가 도덕심이 무감각해진 측면도 있다. 현대자동차 회장은 하청기업에 결재를 제때 현금으로 하고 이윤을 보장하는 기본보다는 사재헌납이라는 프로젝트를 선택한다.
서울시가 진짜 멋진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끊어진 자전거 도로를 잇고 서울 전체의 모습을 조화롭게 지도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디자인도시라는 프로젝트에 맞춰서 별도의 축제와 행사, 건물 설치에 돈을 쏟아 붓는다. 산을 가리는 아파트는 여전히 지어지고 60년대 낡은 건물이 대로변에 방치되고 거리에는 한 구역만 지나면 보도블록과 화단 울이 달라서 풍경이 조잡하다.
사회안전망 갖추기가 우선돼야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면 교사들로 하여금 교육방송(EBS)의 영어교육프로그램만 잘 쓰게 해도 충분하다. 영어권에서 만든 질높은 프로그램이 인터넷에 널려있다. 신윤식 하나로텔레콤 고문이 고향인 전남 고흥의 모교에 프로젝션텔레비전을 기부하여 그런 교육을 실행해서 성과를 보았다.
수학도 과학도 교육방송을 활용하는 것으로 벽촌에서도 공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방식에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다. 원어민 교사를 채용한다는 프로젝트를 세우면 원어민 교사의 질이 어떻든 프로젝트대로만 움직인다.
진짜 교육예산이 넉넉하다면 고등학교 의무교육과 무료급식부터 해야 한다. 학교마다 낙후한 시설을 고치고 과학실험을 진짜로 해보게 해줘야 한다.
가혹한 시기가 다가온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기본적인 의식주를 갖추고 고등학교까지는 차별 없이 공부할 수 있으며 아플 때 치료비 걱정을 안하고 위급한 순간에 보호받을 수 있는 기본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제목만 근사한 프로젝트 시대는 벗어나자.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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