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울산 동구 전하동의 현대중공업 본사 입구. 각종 조선용 기자재를 실은 대형 화물차가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왕복 4차로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울산조선소의 문은 모두 11개. 그러나 하나같이 배를 만드는 데 쓸 자재를 납품하러 들고 나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적어도 이곳 어디에서도 불황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조선은 우리나라 수출의 마지막 보루다. 지난달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석유제품, 일반기계 등 우리 주력제품의 수출 증가세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비해, 선박은 오히려 35%에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조선이 먹여 살려야 할 판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러한 국내 조선업의 맏형이자 세계 최대 조선업체.
부지 안은 더욱 분주했다. 배를 만드는 첫 단계는 부두에서 하역된 조선용 후판을 용도에 따라 자르는 것. 조선소 곳곳엔 다양한 크기로 절단된 후판에 각각의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이런 후판들을 설계에 따라 용접해 붙이면 블록 하나가 완성된다. 옷감(후판)을 마름질(절단)한 뒤 바느질(용접)을 통해 옷 한 벌을 만드는 것과 같다.
육상에서 제작된 블록은 홈이 깊게 파인 독(Dock)으로 옮겨진다. 이 때 바퀴 위에 받침대를 올린 형태의 트랜스포터가 이용된다. 1,000톤까지 옮길 수 있는 트랜스포터의 바퀴는 무려 144개. 조선소 곳곳의 교통은 거북이 걸음의 트랜스포터로 지체되기 일쑤다.
블록은 독에서 크레인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면서 선박의 형태를 갖춘다. 울산조선소의 9개 독마다 축구장 3~5개 넓이의 갑판에 63빌딩보다 더 긴 19척의 배가 빽빽했다. 선박이 완성되면 갑문을 열어 바닷물이 들어온다.
조선소의 경쟁력은 선박 한 척을 건조하는 데 걸리는 기간으로 결정된다. 배를 만들 때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용접. 현대중공업이 1983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연구소인 용접기술연구소(현 산업기술연구소)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순 상무는 "1990년대 1m를 용접하는 데 30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4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이런 용접 기술의 발전이 90년대 47척을 건조하는 데 그쳤던 실적을 올해 97척, 향후 138척까지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 바느질을 자동 미싱으로 바꿨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경쟁력은 창의력에 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일본은 블록을 쌓을 때 서로 맞지 않으면 모든 공정을 멈추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한 뒤 작업을 재개한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블록이 맞지 않으면 튀어 나온 부분은 잘라내 버리고, 모자란 부분은 이어 붙여 현장에서 바로 해결한다.
독 없이 육상에서 건조해 바로 진수하는 방식도 현대중공업이 처음 개발했다. 최근에는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에 비행기 꼬리 날개를 달아 연료 효율을 5% 이상 올리는 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정재헌 총괄부장은 "현대중공업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인자가 있다"며 "어떤 어려움도 이 같은 창의적 예지만 있다면 극복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완성된 배는 선주에게 인도하기 직전 울산 앞바다에서 각종 성능 시험을 거친다. 이날도 최종 테스트를 위해 나온 배 2,3척이 울산 앞바다의 거친 파도를 힘차게 가르고 있었다.
울산=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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