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계 증권사에 다녔던 A모(43) 차장. 지난달 말 갑자기 회사 대표로부터 '오후 3시에 사무실에서 개별 미팅을 갖자'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일상적인 비즈니스 미팅으로 알고 참석한 A차장은 대표로부터 "마켓(시장) 사정이 좋지 않다. 위로부터 인력을 줄이라는 방침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A차장은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려고 개인 컴퓨터를 켰지만 '접속 불가'라는 표시만 깜빡깜빡했다. 면담이 끝나자마자 그는 바로 해고 상태였던 것이다.
#한 외국계 시중은행에 다니는 C모(여ㆍ33)씨는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회사가 전사원의 절반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서를 받고 있기 때문. 그는 "더 이상 외환위기 때와 같은 대량 감원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막상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막막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금융사들의 대량감원은 더 이상 월스트리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빠른 속도로 국내 금융권에까지 엄습하고 있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그 동안 주로 외국계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감원물결은 국내 은행과 증권가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우선 한국씨티은행. 본사인 미국 씨티그룹이 위기를 맞으며 전세계 직원 5만여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국씨티은행은 지난달 말 전체 인력의 50%인 1,700여명에게 희망퇴직서를 발송했다. 지난해 전체 직원 20%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서를 받아 123명을 감원한 것까지 포함하면, 올해 실제 퇴직자가 500여명을 넘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SC제일은행은 190여명을 정리하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국내 은행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조직슬림화'로 시작했지만, 자리가 없어지면 결국 사람을 줄이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국민은행은 신규점포 확장을 전면 중단했고, 신한은행은 전국 100개 지점을 통폐합하기로 했다. 농협중앙회는 본점 인력의 20%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증권가도 예외가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미국계 증권사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튼튼했던 호주의 맥쿼리그룹까지도 최근 한국지사 인력 45명에 대한 감원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증권사로는 하나대투증권이 이미 150명을 명예퇴직시키기로 결정했고,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마저도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당초 계획의 절반으로 축소했다.
주목을 못 받아서 그렇지 제2금융권은 사정이 더 절박하다. 부동산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고 있는 저축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소비침체가 장기화하면 카드사나 할부금융사 등도 감량경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관계자는 "현재는 조직축소,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버티고 있지만 실물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내년 초에는 대형은행도 감원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노사간 고통분담을 위한 협의체 신설 등 사전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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