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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오십통(五十痛), 오십락(五十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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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오십통(五十痛), 오십락(五十樂)

입력
2008.12.0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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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근무처를 옮긴 요즈음 다양한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지켜보아야 할 문화행사도 많아졌다. 단순히 횟수가 많아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담당 프로젝트가 세계문명을 연차적으로 소개하는 초대형급 전시인지라 만나서 협의해야 할 국내외의 기관이나 단체,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술자리를 좇아야 하니 주야 구분할 것 없이 바쁘기만 하다.

어제만 해도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회의를 비롯하여 모두 다섯 차례의 회의에 참석하였고, 중간에 외부 기획사와의 협의 및 오찬도 가졌다. 그리고 틈틈이 직원들의 신상명세도 익혔다.

그것을 마칠 때쯤에는 이미 창밖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집사람의 당부도 있으니 오늘만은 일찍 가자'고 사무실을 나섰으나 춘천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와 우연히 현관에서 조우하면서 다시 이촌동 시장 일대를 헤매게 되었다. 저녁을 겸한 술상을 물리고 커피까지 한 잔하고 돌아오니 어느덧 11시가 다 되었다. 집사람의 푸념이 길게 이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힘든 생활이 이어지는 것은 단순히 서울로 전근되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오십이 되는데, 그 무렵에는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이 아닐까 한다.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기대어 남보다 먼저 출근하고 직원들과 부딪히다가 한밤중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하숙생'이라고 구박을 하고, 직위는 점점 높아져도 인간관계로부터 생기는 고민과 스트레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자연스럽게 오십견(五十肩)이 찾아오고, 병원과 약국을 찾는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성인남자라면 오십이라는 나이에 대부분 겪게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므로 오십통(五十痛)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이 오십에 이르면서, 잠시 졸고 있는 틈에도 내가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오히려 쉬워졌다. 그래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식의 고민보다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가볍게 하는 방법을 예전보다 쉽게 찾아내고 있다. 직원들의 얘기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나고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는 긍정의 마음이 솟아오르고 있다. 결국 나이 오십에 이르러 오히려 삶의 즐거움과 여유가 늘어나고 있으니 오십통(五十痛)은 오십락(五十樂)이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도 '논에 물이 항상 차있으면 벼가 부실해져서 하찮은 바람에도 잘 넘어지기 때문에 가끔 물을 빼고 논을 비워줘야 벼가 튼튼해진다'는 경구(警句)를 보았다. '삶이라는 그릇에 물을 채워야 할 때와 비워야 할 때를 잘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지금의 내게는 '새로운 생활에 적극적으로 부대껴가면서도 한 번쯤은 거리를 두고 마음을 지켜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바로 그 순간 서울로 전근된 이후 쌓였던 2주간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녹아 내렸다. '그래,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지'라는 내 식대로의 해법이 이른 시간 내에 찾아지는 것 역시 오십이 된 즐거움이다.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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