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여섯 살 난 아들 손을 잡고 가수 출신의 노총각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를 찾아와 "우린 가족"이라고 불쑥 선언한다. 한때 눈에 불꽃이 튄 남녀와 그들의 불장난으로 세상을 보게 된 아기에 대한 그저 그런 이야기냐고? 아니다.
열네 살에 첫경험으로 사고를 친 한 남자와, 대를 이어 과속한 그의 딸과, 그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즉 아빠는 서른여섯, 딸은 스물둘, 손자는 여섯 살인 황당 시추에이션. 영화 '과속 스캔들'(감독 강형철ㆍ4일 개봉)은 이렇듯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과속 3대의 지극히 비현실적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이젠 아주 개념 상실이구나" 하는 푸념이나 선입견은 접어두어도 좋을 듯하다. 도가 지나친 비약을 품었지만 '과속 스캔들'은 리듬감 있는 유머와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는 노련한 화법으로 상영시간 108분을 즐겁게 만든다.
황당무계한 설정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웃음의 잔펀치로 곧잘 치환되는 데는 배우들의 역할이 크다. 특히 딸 황정남으로 출연한 신예 박보영(18)의 활약이 눈을 잡는다.
박보영은 2006년 EBS 청소년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배우 신고식을 치르고, 지난해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폐비 윤씨의 어린시절을 연기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린 신예다. 올해는 김수로 주연의 '울학교 이티'에서 속깊은 우등생 역할을 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 개봉한 '초감각 커플'에서 생애 첫 주연을 맡았다.
주연작을 1주일 간격으로 잇달아 개봉시키는 초고속 무서운 신예가 되었지만 정작 그는 연기학원 문을 스스로 두드린 또래들과 시작이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상동아리 활동 중 출연한 영화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덜컥 입상하면서 삶의 길이 바뀌었다.
오디션 제의를 받고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밀의 교정'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올해 단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 본격적인 연기 수련을 시작했다.
"말이 목젖을 때리고 올라오다 다시 내려갔다"는 등의 말투에서 스물 고개를 넘지 않은 청춘의 풋풋함과 재치가 묻어난다. 하지만 나이답지 않게 "예쁜 배우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다.
존경하는 배우도 배종옥과 김해숙. "두 분이 울면 저도 따라 울고, 웃는 연기를 하면 저도 웃더라구요. 그렇게 제가 표현한 감정을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감수성이 좀 지나치지 않냐는 질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좀 심하게 몰입을 한다"고 답한다. 그래서 "하정우씨가 선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 '추격자'를 본 뒤 밤길을 제대로 못 다녔다"는 그는 "얼마 전 우연히 하정우씨를 보고선 무서워서 도망을 쳤다"며 웃었다. "대중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비친 배우를 보고 그 사람의 실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이유에서 저는 이러저러한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라제기 기자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