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목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68) 파리 8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에게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랑시에르는 정치철학과 미학의 첨단에 서 있는 세계적 지성이다.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에테엔 발리바르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뒤를 잇는 프랑스 비판철학 4대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지난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가 처음 한글로 번역된 뒤 올해 <감성의 분할> ,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가 잇달아 소개되며 뒤늦게 한국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작 <불화> 등 다수의 작품들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랑시에르는 8일까지 서울에 머무르며 공개강연회와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불화> 정치적인> 감성의> 민주주의에>
랑시에르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불화'다. 그의 특징은 기존 이론을 뒤엎는 전복성과 극단적 주체성. 랑시에르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지난 세기 네오마르크시스트들의 지적 여정과는 궤를 달리 했다.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도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1918~1990)와의 결별이었다. 알튀세르의 수제자로 1965년 <자본론 독해> 집필에 참여해 명성을 얻었던 그는, 68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태도에 실망해 스승을 떠난다. 자본론>
이후 리오타르, 데리다 등 포스트구조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고문서를 독파하고 노동자들과 섞여 생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비판철학을 정립했다.
반목과 불화는 그의 사상 내면에서도 중심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으로 인식되는 '합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현대의 하버마스 이론에 이르기까지, 합의와 호혜성은 민주주의의 근본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넘어서 늘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주체들이고 따라서 반목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불화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인식한다.
우파적 자유주의든 마르크스주의든 그런 불화를 사회ㆍ경제적 차원에서 억누르는데, 랑시에르는 그 억누름을 '정치에의 환원'이라 규정하고 비판한다.
그런 정치는 결국 사회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 공동체로부터 자신의 몫을 찾아가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인간'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잘 조직된 사회에서도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랑시에르의 시각이다.
따라서 합의를 추구하기보다는 불화를 용인하는 것이 차라리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랑시에르는 주장한다. 피상적으로는 민주주의에 회의적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반목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배제된 자의 존재를 정치적 변화의 추동력으로 보는 랑시에르의 시각은 현대에 와서 더욱 빛을 발한다.
2일 그가 서울대 강연에서 발표하는 강연문 '민주주의와 인권'에서 이런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시민이 되지 못하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민주정치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주노동자 문제에 주목한다.
"지구촌화한 세계의 질서는 인간과 자본의 자유로운 통행에 제동을 거는 경계들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본질은 실상) 가능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러 온 사람에게 그 경계를 더 굳건히 닫아 놓기 위함이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 세계의 질서를 바라보는 랑시에르의 관심은 미학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그는 "감성적 경험은 예술작품의 영역을 넘어서 공동체를 정의하는 감각적 풍경"이며 "미학적 질문들은 곧 정치적 질문, 공통 세계를 편성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으로 상징되는 랑시에르의 미학 세계는 3일 홍익대에서 열리는 강연 '감성적 전복'에서 소개된다. 그는 4일에는 '현대정치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을 주제로 중앙대에서 강연을 갖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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