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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는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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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는 함께 있다

입력
2008.12.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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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참 감동스러웠다. 연초에 우리 숭례문이 불타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불길 속의 숭례문을 화면을 통해 보고 또 보았듯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버락 오바마를 화면으로 보고 또 봤다. 물론 완전 다른 마음으로 말이다. 새삼 나 자신이 얼마나 비관적인 생각에 물들어 있는 사람인가를 깨달았다.

섣부른 비관은 말아야

온 매스컴이,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버락 오바마를 점쳤어도 나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내가 알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그 동안 모르고 있던 나라다, 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보기 좋게 당선이 됨으로써 나를 감동시켰다. 물론 내가 모르는 수많은 물밑 일들이 작동되었겠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오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잘못 될 것이라는 비관을 앞서 갖는 나 같은 사람을 놀라게 하며 앞으로 어떤 일이든 섣불리 비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예측들 때문인지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 요즘에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 지금도 힘든 데 내년엔 그리고 그후엔 더 그럴 거라는 예측은 새로운 무엇을 계획하려는 마음을 꺾어놓기에 충분하다. 어느 상가에서 연말 분위기를 내려고 일찍 걸어둔 크리스마스 트리나 반짝등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경기 침체를 실감하는 때는 택시를 탈 때이다. 길거리에 빈 택시가 어찌나 많은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요즘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가 또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그만큼 오랜만에 손님을 태웠다는 얘기다. 사회 전체가 대기업에서부터 가정생활까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더 키워서 번창시킬 생각보다는 지금의 일 조차 축소시켜 소비를 줄이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 동네에 꽤 오래된 정육점 앞을 지나갈 때도 보면 늘 바쁘게 움직였던 정육점 주인이 계산대 앞에 서서 길 쪽을 내다보며 서 있는 모습도 종종 보이더니 어제 보니 정육점을 반으로 줄여 한쪽에서는 야채를 팔고 있었다.

사회 분위기가 이런 긴축정책을 펴는 쪽으로 형성되면 가장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들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젊은이들 같다. 얼마 전에 모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할 자리가 있었을 때도 자연 청년실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란 게 고작 이럴 때 일수록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면서 살면 행복하겠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전문성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었을 뿐이다.

적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라고, 그것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터 줄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이 사회에 나아가 기량을 펼쳐보기도 전에 패배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싶어 안타까웠다.

작은 감동 서로 나눴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시절을 통과해 나갈 때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자각이다. 더불어 필요한건 감동이지 않을까. 감동을 받는 순간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축적된다. 사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능력은 누구에게든 있다. 그 감동의 재능을 겨우 20%밖에 쓰지 않는 게 우리들이라고 한다. 감동의 가장 좋은 재료는 당연히 관심일 것이다.

감동은 미국 대통령 선거 같은 큰 것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는 것을 보고 독자라는 어떤 분이 모과차를 내 집 앞에 놓고 갔듯이, 나도 그것에 감동을 받아 집에 있는 사과들을 바구니에 담아 옛집의 관리실에 두고 왔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친 적 없어도 이렇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선이 끊어지지 않게 이렇게 고단한 시절일수록 조금씩만 서로를 감동시키면 이 시절을 인간적으로 견디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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