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서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은 단연 미술 관련 서적이다. 직업상 전시회 카탈로그에서부터 미술사와 비평, 학술 서적에 이르기까지 목차와 서문 정도라도 눈에 한번씩은 넣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 서적들이 이렇게 직업적인 의무를 동반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내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책들이 있다. 노래책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음악책은 물론 교회 성가대의 악보집을 비롯해 중3 때 연합고사 마친 후 기타를 잡으면서 보기 시작한 노래책은 늘 나와 함께 했다.
변성기의 목소리로 헨델과 모차르트의 레퍼토리를 따라잡던 교회 시절에도 대중가요와 팝송은 가장 절친한 벗이었다. 노래패 기타리스트를 맡았던 대학 시절, 노래책은 나의 가장 절실한 텍스트였다. 군대 시절과 복학생 시절에도 기타 한 대와 노래책은 '작업의 정석'을 위한 필수품이었고, 해운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지금까지도 노래책은 나를 확인하는 고전이다.
화가 박영균의 그림 '86학번 김대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세태를 담고 있다. 안치환이 만든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김대리는 마이크를 들고 반라의 여성이 등장하는 모니터 앞에서 노래한다. 노래방에 가면 사람들은 열심히 독서를 한다. 타인의 노래를 듣기보다 자신이 부를 노래를 선정하기 위해 열심히 노래목록을 독서하는 것이다. 노래책 대신 등장한 화면은 사람과 노래의 살뜰한 만남을 제한한다. 악보와 노랫말이 있는 노래책의 매력을 상실한 시대이다. 기계가 없으면 노래 한 가락 못 뽑는 현대인의 모습은 노래책의 실종과 맥락을 같이한다.
노래는 문학과 다르고 음악과도 다르다. 노래책은 악보와 시와 화보를 함께 담은 좋은 책이다. 음악평론가 이영미가 펴낸 정태춘 노래집은 그 자체로 서정적인 시집이자 악보집일 뿐만 아니라 사진집이고 비평집이다. 그의 예민한 감성과 카랑카랑한 비판적 지식이 녹아있는 노래책은 음반에 맞먹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김준기ㆍ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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