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헌법 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1월1일)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12월2일이 법정 시한이다. 하지만 여야가 하루이틀 새에 예산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없다.
국회 자료집에 따르면 1990년 이래 국회가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킨 것은 5차례에 불과하다. 올해까지 무려 14차례나 헌법을 위반했다. 특히 2003년부터 올해까지는 6년 연속 법정 시한을 위반하게 됐다.
국회는 법정 시한을 지키기는커녕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도 예산안 합의 처리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내년도 경제성장률 하락 반영 여부, 법인세와 상속세 감면 등의 감세안 처리 여부, 지방재정 감소 지원책 보강 등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1일부터 시작될 예정인 예결위 계수조정소위가 제대로 진행될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이 "큰 틀의 합의 없이는 계수조정소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야당과 최대한 협의해 절충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연말까지 가서야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예산안 지연 처리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헌법을 어겼다는 비판은 항상 제기돼온 것이다. 나아가 예산안 의결 지연은 중앙정부의 예산 확정 후 공고, 집행계획 수립, 분기별 배정계획 및 월별 자금계획 작성 과정 등에서 줄줄이 차질을 발생시킨다. 집행준비 부실로 잦은 계획 변경 등 부작용과 비효율을 부를 수밖에 없다.
헌법이 '30일 전 처리'를 규정한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다. 또 지자체와 정부 산하기관 등은 확정되지도 않은 정부보조금ㆍ출연금 등을 기준으로 편법적으로 자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결국 최종적인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한국정치학회장인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는 "국회가 타성에 젖어 예산안 처리가 늦어도 국정운영에 별 지장이 없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경종을 울릴만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적 강제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언론이나 학계, 시민단체 등의 지속적 압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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