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마음의 대화를 하는 자리였다. 구체적 주제는 없었다. 밀실 대화가 아니고 마음의 대화 자리였다. 국회 운영과 경제 상황 등을 허심탄회하게 걱정하는 자리였다."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의도 윤중로가 3류 정치가 판치는 비열한 거리로 변해버렸다. 국민에게 불신을 주고 경제에 불신을 주더니, 정치마저 불신의 시대를 개막해 버렸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비밀회동을 가진 사실이 밝혀지자 양당 대변인이 주고 받은 말이다.
공동체 위협하는 상호 불신
여야 대표가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우리 몸에 피를 돌게 하는 것과 같다. 여러 정보와 의견이 사회 안에서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사회적 신뢰가 생기고,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의 목표 달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정치권의 만남은 언제나 뒷말이 무성했다. 이번에도 양당 대표가 같이 말하고 같이 들었을 텐데, 서로 딴말이다. 정말 만나긴 만났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왜 이럴까. 서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남을 통한 소통 확대는커녕 불신만 쌓인다.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도 신뢰 위기와 소통 불량이 한 몫을 했다. 미국 금융회사의 부실화와 연쇄 도산이 세계적 신용경색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서로 현금을 확보하려는 세계적 경쟁이 시작됐다. 금융 위기 속에 믿을 것은 현금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투입됐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급격히 회수되며 증시 하락과 환율 급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자금 압박을 받고 부동산 시장도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은행에 자금을 싼 이자에 넉넉하게 시장에 풀라고 하지만, 은행은 들은 척도 않는다. 정부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는 사회 불안으로 이어진다. 고용 불안과 취업 대란 공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궁극적으로 공화국 공동체가 붕괴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소통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대통령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우선 대통령은 부적절한 언급에 유의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의 주식 투자 권유 발언을 둘러싼 것과 같은 논란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대통령의 중차대한 위상을 생각할 때다.
다음으로 대통령은 경청해야 한다. 리더십은 웅변보다 경청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텅 빈 구멍에서 흐른다. 악기나 종(鐘) 속은 비어 있어 공명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 귀에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사람의 공명통(共鳴桶)은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고 듣게 되면 참된 소리가 들린다. 대통령이 들으려 할 때 비로소 대화의 준비가 된 것이며 진실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대통령은 듣기 보다 말하려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라디오 연설 정례화에 국민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맹목적 '집단사고' 피해야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허위합의 효과'라는 게 있다. 남들이 자기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정도를 실제보다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다. 이에 따라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고, 신념에 어긋나는 정보는 회피하려 한다. 결국 집단사고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기 극복은 어려워진다. 따라서 대통령의 균형 감각과 인사가 매우 중요하다.언제 끝날지 모를 위기의 터널 속에 들어선 대한민국. 신뢰 회복과 소통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대통령의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