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ICPRCP) 30주년 특별회의가 26일 서울에서 열렸다. ICPRCP는 유네스코가 1970년 채택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등 불법문화재 반환을 규정한 국제규범의 이행 촉진을 위해 1978년 설립한 정부간 위원회다. 프랑스 파리에서 격년으로 정기회의가 열리며, 우리나라는 1989년 이래 위원국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서울 회의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가 중요 안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와 토론을 거쳐 채택한'서울 전문가회의 결과문'은 "문화유산에 접근하고 향유하는 것은 모든 민족주권의 특성"이라고 전제,"이전된 문화재의 반환은 민족 유산 및 정체성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수단이다"고 규정했다. 이런 결론은 우리에게 특히 의미가 크다.
유네스코 서울회의의 권고
전문가회의 결과문은 이에 덧붙여 "이전된 문화재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책임"이라며, "박물관, 도서관 등 관련 기관은 문화재 반환 요청과 관련해 성실하게 협의하도록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결론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에는 조선 왕조의 의궤(儀軌) 297책이 포함되어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친 왕실의 주요 행사와 건축물 왕릉의 조성과 왕실 문화활동 등을 그림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행사의 주요 장면과 기마 의복 병풍 도장 상여 그릇 악기 등의 많은 도구와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반차도(班次圖)와 도설(圖說) 등은 오늘날의 영상자료 못지않게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널리 알려진 정조의 능행도(陵行圖)는 정조의 능행 행차 전 여정을 15.4m에 걸친 방대한 그림과 기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식과 실물이 거의 없어진 오늘날 의례 연구 및 그 복원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의궤에는 의례에 사용된 각종 물품의 이름이나 건축용어, 궁중의복과 궁중 음식의 이름들이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국어사와 미술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왕실 기록문화의 백미(白眉)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는 조선왕조 의궤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다. 유네스코도 2007년 조선왕조 의궤를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1993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정상 회담차 서울에 오면서 의궤 중 한 책인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를 반환하였으나 나머지 296책의 의궤는 아직까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독일 일본과 치열한 경합하던 경부 고속철도 차량사업을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따내도록 도우려는 의도에서 나머지 도서들도 반환할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고속철도 사업권은 프랑스에 넘어갔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그 후 한 권도 반환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프랑스 '소유권'주장은 부당
프랑스는 여전히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의 국유재산으로서 프랑스 국내법에 의해 양도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테랑 대통령이 이미 1책을 반환한 데서 보듯, 그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외규장각 도서는 전쟁에 따른 전리품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약탈된 것이므로 프랑스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반환 요구는 정당하다.
위원회가 지적하였듯, 부당하게 이전된 문화재의 반환은 민족유산과 정체성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상호존중의 분위기에서 문명 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프랑스는 의궤를 비롯한 약탈 도서를 하루 속히 반환해야 한다.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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