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이징 조선족 식당에서 북한 처녀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식사를 마칠 즈음 북한 종업원들이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고 들어와 장기자랑을 했다. 흘러간 우리노래를 하는가 하면 손풍금으로 러시아 민요를 연주하기도 했다. 개량형 가야금을 켜며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처자의 모습은 가히 뇌쇄적이었다.
팁을 주려 했으나 받지 않았다. 대신 100 위안짜리 인조 꽃다발을 정성으로 받았다. 그들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들은 우리가 남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가슴에 고(故) 김일성 주석의 뱃지도 달고 있었다. 외화벌이를 위해 차출돼 베이징으로 파견 나온 여성들이었다. 출신 성분도 좋고 충성심도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를 대하는데 적개심도, 소홀함도 없었다. 오직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 좀 거창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베이징의 북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평양도 그렇다고 본다. 1960년대 말 동독이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면서 사실상 사회주의로의 독일 통일을 포기했듯이 지금 북한도 내심으로는 적화통일의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남한에서 북한의 적화통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 판을 깨는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한미 연합군의 전력이 북한군을 괴멸시킬 것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 대가는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다. 한국 민간인과 군인 150만 명, 미군 5만 명이 죽고 북한 군인과 민간인은 그보다 훨씬 더 죽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인명도 그렇지만 경제적 피해도 엄청날 것이다. 과거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베이루트가 지금 폐허가 돼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설령 전쟁이 아니더라도 국지적 도발로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상호 괴멸적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타협으로 위기관리를 하면서 공존할 것이냐, 이도 저도 아니고 적당한 시점에 시세를 봐가면서 임기응변식 대응을 할 것이냐다.
이 대목에서 과연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명확한 전략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 "북한은 떼만 쓰는데 왜 우리가 위기관리를 해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집안의 장형이나 회사 대표가 위기관리를 하지, 집안의 건달이나 종업원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른이라고 해서 마냥 자존심을 굽혀가며 참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도 서슴지 않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조차 결국 북한과의 대화로 돌아섰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긴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남북, 북미관계는 국력의 게임이고 그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뻔한 결과를 앞에 두고 기분 나쁘다고 버릇을 고치는데 전력을 다한다고 한들, 북한이 "앞으로 형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자존심은 극히 개인적인 것일 뿐 전략적 관점에서는 크게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이미 예정된 결론을 향해 어떻게 위기관리를 해나가느냐, 어떻게 상호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드느냐가 국가적 관점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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