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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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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

입력
2008.12.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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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강수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불황까지 겹쳐 거의 모든 공연의 흥행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로미오와 줄리엣'(17, 18일 세종문화회관)은 티켓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녀온 관객 중에 어떻게 보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무척 많이 계셨다. 그것도 약간 조심스럽게 말이다.

대단한 명작이라고 들었는데 기대에 못 미쳤기에 헷갈려서 그러는 것 같았다. 필자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그간의 슈투트가르트 발레 내한 공연 중 가장 밋밋했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왜 그랬을까?

이 발레의 안무가는 1960년대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전성기를 이끈 존 크랑코다. 그의 업적은 명확하다. 춤이 드라마를 압도하던 발레의 전통을 딛고 연극적인 표현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 기념비적 작품들이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인데, 그 중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으니 시금석이라 할 것이다.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58년에 초연되었고 1962년에 슈투트가르트 발레를 위해 전면 개정되는데, 그 표현이 프로코피에프의 같은 곡을 사용한 러시아의 오리지널 안무들을 압도했기에 대단한 호평과 함께 서유럽 발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케네스 맥밀란, 유리 그리가로비치, 루돌프 누레예프, 안줄랭 프렐조카쥬, 장-크리스트프 마이요 등도 이 발레의 새로운 안무에 가담했다. 그들의 목표는 고전이 된 크랑코를 넘어서는 것이었으리라.

비록 크랑코가 원조이지만 발레 팬에게 더 친숙한 것은 다른 안무가의 작품들이다. 대부분 영상물로 나왔고 국내에서 공연되기도 한 덕분이다. 그러나 크랑코 것은 국내 초연일 뿐 아니라 발매된 영상물도 없다.

그러니 크랑코를 넘어서고자 훨씬 자극적인 기법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후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익숙한 상황에서 아무리 고전이래도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에 단번에 매료되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크랑코를 우습게 보는 것도 곤란하다. 그가 있었기에 연극적 발레가 힘을 얻게 되었다. '오네긴'의 경우는 다른 좋은 안무가 존재하지 않고 음악도 차이코프스키의 여러 작품을 조합한 독자적인 것이기에 지금 보아도 참신성을 잃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반세기 전에 이 안무를 처음 본 관객의 입장이 되어 돌이켜본다면 전통적인 관점을 깨뜨린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고전이라고 무조건 맹신하는 것도, 그렇다고 그 가치를 현재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점을 재차 실감했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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