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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단편집 '오래된 일기' 펴내/ "죄·부채의식과 뗄 수 없는…그것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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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단편집 '오래된 일기' 펴내/ "죄·부채의식과 뗄 수 없는…그것이 인간"

입력
2008.12.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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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규는 집이 흔들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그녀가 밥상을 치우러 들어갔을 때 그는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단편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에서)

이승우(49)씨의 소설이 고민하는 삶은 '소시민적 삶'이다. 등단 초기였던 1989년 '이 작가의 관심세계에는 역사나 사회와 같은 거대한 문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라는 평론가 김치수씨의 지적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이씨의 소설은 개인적 관심사에 몰두하는 소시민들의 삶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시민들의 삶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일상에 자족하는 그들에게,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다. <심인광고> 이후 3년 만의 창작집 <오래된 일기> (창비 발행)에서는 이씨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그 집이 흔들린다. 집은 흔들리고, 주인공들은 제 집에서 밀려나 방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타인의 집'의 주인공은 아내와의 불화로 늦은 귀가를 일삼는 사내다. 아내의 생일을 계기로 관계 회복을 꾀하고자 사내는 모처럼 일찍 귀가하지만, 아침에 문을 나섰던 자신의 집의 잠금장치가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뀌어 있다. 아내는 사라지고, 그 집을 차지하려는 장인은 집안에 들어앉아 사내의 물건을 박스에 담아 문밖에 내놨다.

'방'이라는 제목의 단편의 주인공은 소설을 쓰기 위해 10년간 다닌 직장에 사표를 쓴 남자다.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준 큰어머니를 집에 모시는 문제로 다툰 뒤 남자의 아내는 상의도 없이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집을 팔고 원룸으로 이사를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때때로 내가 창고에 쟁여진 물건과 다름없이 여겨져서 마음이 심란했다"고 느낀다.

작가는 말한다. "집 혹은 방은 존재의 안정감을 보증해주는 공간이다. 집의 흔들림, 혹은 방에서의 쫓겨남은 곧 존재로부터의 소외감 혹은 존재의 위기감을 상징한다."

이씨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녀가 대부분 불화하고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정은 '집의 흔들림'에 대한 작가의 예민한 감각으로 미루어보건대 자연스럽다. 집의 위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즉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의 흔들림, 위기에 다름아니다.

'신 앞에 던져진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작가'라는 평가처럼 오랫동안 기독교적 원죄의식을 주된 소설적 테마로 삼았던 이씨는 이번에는 그 테마를 '빚진 자의 부채감'이라는 속세적 윤리의식으로 살짝 비튼다.

죄의식과 부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표제작은 자기반영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얼음과자를 사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원짜리 한 장을 훔친 날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숨을 거둔 유년시절의 사건 때문에 주인공은 평생 죄의식에 빠져있다.

그는 또한 자신보다 더 소설을 쓰고 싶어했으나 결국 소설가가 되지 못한 채 일찍 죽음을 맞이한 사촌의 그림자 때문에 부채감을 느낀다. 그에게 소설쓰기란 일종의 '빚갚음'의 행위이다.

두 마지기의 땅뙈기만 담보로 넘겨준 채 거액의 빚을 떠넘기고 잠적한 이웃집 남자를 찾아나섰다가 추적을 포기했지만, 땅값이 폭등해 오히려 횡재를 하는 사내가 등장하는 단편 '실종사례'는 빚진 자는 누구이고 빚 갚을 자는 누구인지가 불분명한, 이승우 식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이씨는 "죄의식이나 부채의식은 지나치면 자기비하나 자기학대로 이어져 인간을 황폐화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과연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종교적 의미의 죄의식이든 세속적 의미의 부채의식이든 나의 소설적 주제는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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