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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천사' 꿈꾸는 55세 신사 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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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천사' 꿈꾸는 55세 신사 만학도

입력
2008.11.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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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성신여대 간호학과 전공 과목인 '간호연구법' 기말고사 시험시간.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이 빼곡한 강의실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답안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주인공은 이 대학 간호학과 '최고령 청일점'인 이준헌(55)씨. 시험을 마치고 나온 이 씨의 검은색 서류 가방에는 형광펜 밑줄이 빽빽한 강의자료가 가득했다. 이 씨는 2007년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이 성신여대 간호학과로 통합되면서 남학생 18명과 함께 '금남의 구역'에 입성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대우실업 입사, LG경제연구소 및 LG그룹 회장실 근무, 미국 한의사…. 남부럽지 않은 경력의 이 씨가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나이에 백의의 천사가 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2001년 뇌졸중으로 장기간 투병하던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나라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아픈 사람들에게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끊임없는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는 그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의료봉사를 마음 먹었다.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침술사 과정에 입학한 이 씨는 2002년 한의학을 배우러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는 수능시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부인 윤영옥(54)씨와 외동딸이 "잘 다니던 대기업을 왜 그만두냐"며 반대가 심했다. 아내와는 사실상 별거생활이 이어졌고 이 씨는 아내에게 "집에 손 안 벌리고 공부하겠다. 돈을 안 줘도 좋으니 시간만 허락해달라"고 겨우 설득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34평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린 이씨는 미국 2년제 한의학전문대학원 사우스베이로(South Baylo)를 졸업했다.

현지에서 1년간 한의사로 일한 이 씨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2006년 다시 귀국한다. 이 씨는 "한의사보다는 간호사가 환자를 더 가까이서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해 국립의료원 간호학과에 합격한 이 씨는 자신의 세 번째 대학인 성신여대로 옮겨 작년에 결혼한 외동딸(28)보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 씨는 "처음에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 미국행을 반대하던 장인도 사위의 주사실습을 위해 기꺼이 팔을 내놓는 걸 보면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이 씨는 요즘 국가고시 간호사 자격증 취득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오후 7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학원에서 영어회화 수강을 하는데 직장생활 25년 중 15년을 해외출장으로 보내고 4년 동안의 미국생활로 영어에 능통하지만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재산을 부인이 관리하고 있어 한달 용돈은 교통비 10만원 식대 10만원 학원비 10만원이 전부다.

이 씨는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2년 정도 국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아프리카 등에서 의료봉사를 펼칠 계획이다. 이 씨는 "소록도 백령도 등 도서지역에 봉사할 간호사 모집을 보고도 자격증이 없어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안타까웠다"며 "마음을 먹고 결정만 하면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고 말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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