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캔버스가 된 담장·그림같은 바다 '앙상블'
산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였으니 유년의 많은 시간을 그곳의 골목에서 보냈다. 미로처럼 얽힌 비대칭의 골목길은 아이들에겐 숨바꼭질하기엔 최고의 놀이터였다.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이웃들은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리어카에 실린 이동사진관에서 동생의 백일 사진을 찍은 곳도 골목이었고, 빈 병과 고무신으로 번데기를 바꿔 먹은 곳도 그 골목이었다. 비탈지고 좁았지만 골목은 지금의 복합쇼핑몰처럼 일상의 많은 것을 담아낸 공간이었다.
통영에 아름다운 골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통영항의 강구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피랑 마을이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허름한 달동네가 최근 '통영의 몽마르트'로 거듭나고 있다.
남망산 조각공원과 마주보는 산동네 동피랑 마을은 통영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언덕배기 마을이다. 초라한 달동네가 인기를 얻은 건 무채색의 시멘트 벽에 화사한 그림이 그려지고부터다.
항구를 굽어보는 전망대처럼 원뿔형으로 솟은 동피랑 언덕은 충무공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원래 이 마을은 통영시에 의해 완전 철거될 운명이었다.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만들어 관광자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 '푸른통영 21'이라는 시민단체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공공미술의 기치를 걸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서 공모전을 벌였다. 그해 10월부터 각지에서 몰려든 미술학도들이 골목 담벼락마다 벽화를 그렸다. 허름한 달동네는 바닷가의 벽화마을로 새로 태어났고 소문이 번지면서 동피랑은 통영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평일에도 수십명, 주말에는 200~300명의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이 찾아 들자 뒤늦게 깨우친 통영시는 마을 꼭대기에 동포루만 복원키로 하고, 마을 철거 계획을 철회했다. 예술이 마을과 실핏줄 같은 골목을 살려냈다.
푸른통영 21 윤미숙 사무국장은 "철거를 앞둔 마을을 찾았을 때 갈 데 없는 할머니들은 울고 있었다. 건물은 무허가이고 세 든 사람이 대부분인데 보상도 못 받는 어려운 이들을 어디로 쫓아내겠다는 건지 답답했다"고 했다.
마을의 입구는 중앙시장 옆 '강원수산' 골목에서 시작된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은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다.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높이는 껑충 올라 풍경도 달라진다. 통영항이 감싼 바다가 처음엔 납작한 타원형이었다가 점차 동그란 원형으로 부풀어 오른다.
벽화길 이정표를 따라 색색의 화려한 벽화를 감상한다. 초라한 집들의 벽이 캔버스가 됐고, 알록달록한 벽화로 집들은 누추함을 감쌌다. 골목 이곳 저곳에선 사진을 찍으러 온 이들이 두리번거린다. 마을 여러 곳에 '벽화를 관람할 때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붕에 올라가거나 집안을 기웃거리는 일은 삼가달라'는 부탁의 푯말이 붙어 있다.
마을을 한바퀴 돌다 구멍가게를 만났다. 화가들이 이 가게 한쪽 공간에 의자와 허름한 테이블을 설치해 놓고 '태인 cafe'라는 간판을 그려 넣었다. 카페의 메뉴는 커피와 컵라면, 아이스케끼뿐. 가게 문을 두드려 커피 한 잔을 청했다.
백태진(73) 할아버지가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직접 타준다. 설탕 한 수저를 듬뿍 더 얹어주는 건 맛있게 대접하고픈 마음일 게다. 달디 단 커피만큼이나 그 정이 달콤했다. 관광객이 많아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오는 사람 구경하고, 말할 사람이 생겨 심심치 않아 좋다"고 했다.
태인 카페 앞집의 벽면엔 헤드폰이 그려져 있다. 담벼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림 속 헤드폰에선 바다 소리가 들렸다.
마을의 그림은 2년 후 다시 그려진다고 한다. 벽화가 색이 바래기 때문이다. 그땐 담벼락에 또 어떤 희망이 그려질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통영=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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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의 명주, 술익는 마을… 향기에 취하다
눈 내리는 겨울, 술 익는 마을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한국관광공사는 '전통주를 찾아서'란 테마로 12월의 가 볼 만한 곳 4곳을 선정했다.
■ 경기 포천-배상면주가와 이동막걸리
물 맑은 포천에는 2곳의 술 명가가 있다. 운악산 아래 자리한 배상면주가와 백운산 아래의 이동막걸리다. 배상면주가 전통술박물관인 산사원은 술 빚는 도구 전시장과 함께 시음장을 갖추고 있어 관람객들은 직접 술 맛을 보고 가양주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이동막걸리 양조장에선 술 빚는 과정을 볼 수 없지만 인근의 직판장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생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산사원 (031)531-9300, 이동막걸리 (031)535-2800
■ 충남 서천-소곡주
서천군 한산면에는 술 익는 냄새가 자욱하다. 백제 때부터 빚어온 소곡주가 익는 고장이다. 최고급 찹쌀로 빚어 100일 간 숙성시켜 만든 소곡주는 그 달큼한 맛이 일품으로 한번 맛보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 해서 '앉은뱅이 술'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인근 금강 하구언의 신성리 갈대밭은 철새를 관찰하기에 좋다. 한산소곡주 (041)950-0290
■ 전북 완주-송화백일주
완주의 송화백일주는 송홧가루, 솔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찹쌀, 백미, 보리 등 다양한 재료로 빚은 밑술을 증류해 얻는 증류식 소주다. 송홧가루의 황금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술은 38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럽다.
소주지만 청주 같은 묵직함도 함께 느껴지는 술이다. 술 한 병을 빚는 데 꼬박 100일이 걸리고, 제맛을 완성하기 위해 3년을 더 숙성시킨다고 한다. 송화양조 (063)221-7047
■ 제주 서귀포-오메기술
옛 제주도에서 당신(堂神)에게 제사를 드리며 따르던 술이 좁쌀로 빚은 오메기술과 이를 맑게 증류시킨 고소리술이다. 도수는 일반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맛이 새콤달콤해 여성들이 즐기기에도 무난하다.
흔히 좁쌀막걸리라 불리는 오메기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은 성읍민속마을이다. 전통술 기능보유자인 김을정 할머니 댁도 마을 안에 있다. 성읍민속마을보존회 (064)787-1179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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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굴·회에 시원한 복국, 지중해풍 리조트 '오감만족'
통영의 맛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절정을 맞는다.
지금 통영만의 푸른 바다에선 살진 굴이 포동포동 자라고 있다. 통영의 굴은 수하식으로 양식된다. 양식이라고 하지만 다른 어류처럼 사료 등을 먹고 크는 게 아니라 바닷물에서 천연 양분만을 빨아들인다.
통영에서도 생굴을 사기는 쉽지 않다. 서호시장은 오전에 장이 파하고 다른 시장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다. 미륵도 입구인 통영여객선터미널 1층의 생굴유통센터 '대양수산'에선 생굴이나 따끈하게 껍질째 쪄낸 굴을 맛볼 수 있다.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도 받을 수 있다. 김장철인 요즘이 최고 비싸 1kg에 1만2,000원~1만3,000원을 오가지만 12월 중순이 지나면 1만원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055)644-4980, 011-864-2017
동피랑 마을의 골목길은 중앙활어시장으로 이어진다. 좌판에 펄떡거리는 횟감이 널렸다. 시장 안쪽에는 통영 술꾼들의 속을 풀어주는 복국집들이 여럿 있다. 그 중 한산식당(055-644-5828)은 냉동복이 아닌 생복을 이용, 국물맛이 훨씬 시원해 현지인들로부터 많은 추천을 받는다.
12월 통영에 지중해풍 아름다운 리조트가 문을 연다. 통영 산양읍 미남리 수산과학관 위편에 자리잡은 '클럽 이에스 리조트 통영'이다. 비회원도 이용 가능한 가족호텔로 운영되는 이곳은 120실 규모로 향후 130실이 추가 조성된다.
클럽 이에스 통영의 최고 자랑은 조망이다. 객실의 창문 밖으로 한려수도의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른 아침 일출에 맞춰 바라보면 마치 섬들이 구름처럼 바다에서 몽실몽실 피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건물도 독특하다. 직선이 없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 자연엔 직선이 없다"는 이에스리조트 이종용 사장의 디자인 철학이 빚은 건물이다.
지붕도 조망을 가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구부렸고, 창문은 물론 실내 벽 모서리도 둥글게 처리해 모가 나지 않는다. 테라스에 설치된 휘어진 통나무 난간도 곡선에 대한 고집스러움을 보여준다. www.esresort.co.kr (02)508-2323
통영=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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