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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돌게 하라/ 은행 직원들 왜 몸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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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돌게 하라/ 은행 직원들 왜 몸사리나

입력
2008.11.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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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늘리겠다고 해서 한 가닥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선 이제 곧 계약금이 들어온다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

최근 경남 지역에서 운영하던 공장 문을 닫은 A(57)씨는 “조금만 기다려줬다면 수주계약을 맺은 대기업에서 계약금을 받게 돼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대출을 막아버린 은행 탓에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중소기업청이 이 달 중순 43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행들의 담보 요구가 과거보다 많아졌고(45.3%) 대출 한도는 줄었으며(56.6%) 심사기준이 까다로워지는(56.6%) 등 대출 여건이 나빠졌다고 답변했다. 소극적인 대출 관행이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 직원들도 할 말은 있다. 대출해줬다가 부실이 되면, 결국 대출심사ㆍ결정을 내린 은행 직원이 책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의 한 부장급 간부는 “외환위기 직후에도 정부가 중소기업대출확대를 독려하며 면책을 약속한 바 있다”며 “그러나 이후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결국은 대출부실을 많이 낸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감원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또 다시 은행감원 등이 있을지 모를 텐데 대출 많이 했다가 부실을 낸 직원과, 대출을 적게 하더라도 부실을 안낸 직원 가운데 과연 누가 살아 남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말로는 ‘면책’ 얘기가 나오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담당 B(39)과장은 “일단은 면책이 어떤 식으로 보장되는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을 뿐더러 은행 관행상 한번 취급한 여신이 평생 따라오게 되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다른 은행에서 자금줄이 막힌 기업은 더 큰 위험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의 중소기업추진부 C(41)차장은 “취급한 여신에서 부실이 발생했을 경우 본인은 우선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은행이 입은 손실은 어떻게 하느냐”며 “공식적으로는 면책을 받더라도 은행 내 평판까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은행 직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출을 하게 하려면 확실히 ‘책임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줘야 한다. 하지만 면책에는 양면성이 있다. 과도한 면책은 은행고유의 심사기능을 약화시키고 자칫 도덕적 해이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본점서 근무하는 한 과장급 직원은 “무작정 면책해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이한 사고방식 역시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면책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직원들의 중기 대출을 취급하는 현장에서 모럴 해저드가 나타날 수 있다”며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등한시하고 무분별한 대출을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금융당국과 은행이 머리를 맞대고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보다 구체화된 면책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금융위원회 당국자는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금융감독원이나 은행 내부의 평가 기준을 점검하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대출부실의 구체적인 면책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정부의 면책조치가 각 은행 영업점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판단 하에 ‘정부의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에 따른 중소기업 여신에 대해 고의 및 중과실이 없는 한 해당 임직원을 면책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26일 각 은행에 발송했다. 금감원이 기업대출에 대한 임직원 면책조항을 명시한 공문을 은행에 보낸 것은 2001년 1월 대우채 사태 이후 약 8년 만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기존 면책조항을 더 구체화하고 은행직원에 대한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소기업대출확대 정책이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선 은행대출담당 직원 개인에 대한 면책 뿐 아니라, 은행 경영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도 자기자본이 부실해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개인적 면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중기 대출 보증비율을 한시적으로 100%까지 올려주는 등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현장에서 피부로 와 닿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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