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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모순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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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모순어법'

입력
2008.11.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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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해결에 1분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24일 재무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인선을 발표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당장 오늘부터 금융시장을 돕는 일에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 시장적'으로 평가된 경제팀 구성과 오바마의 결연한 다짐에 힘입어 미국 주식시장은 이날 하루 5% 가까이 폭등했다.

널뛰기를 거듭하는 증시는 언제든 표변할 수 있지만, 신속하고 단호한 위기 대응이 일단 큰 효과를 거둔 셈이다. 특히 우리 언론도 제목으로 뽑은 '1분도…' 발언의 위력이 돋보인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의 원로 논객 윌리엄 새파이어는 오바마 당선자가 첫 기자회견에서 '모순어법(Oxymoron)'을 사용한 것에 주목한 칼럼을 썼다. 오바마는 "아주 신중하고 신속하게(with all deliberate haste) 위기에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새파이어는 이런 의도적 모순어법은 1954년 대법원이 학교 내 '흑백분리'를 위헌으로 선언하면서 '신중하고 신속한(with all deliberate speed) 차별 철폐'를 명령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뒷날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이 비판했듯, "신중함은 넘치고, 신속함은 부족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새파이어에 의하면 오바마의 모순어법은 역대 대법관들이 즐겨 사용했다. 그 뿌리는 링컨 대통령이 점진적 노예해방을 지지하면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입버릇처럼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고 말한 역사를 인용한 것이다. 오바마는 스스로 모범으로 삼은 링컨의 말을 흉내냈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시장과 국민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꾼 것으로 볼 만하다. "허비할 여유가 없다"는 말도 굳이 따지면 모순된 듯하지만, 시장과 국민이 헷갈리지 않는 단호한 메시지로 들었다면 성공한 셈이다.

■모순어법은 셰익스피어 문학 등에서 흔히 사용된다. 겉보기 논리에 어긋나는 단어와 개념을 하나로 묶는 '역설의 미학'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설명이다. 번역가 이윤재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등을 예로 들며, "모순어법은 활발한 두뇌활동의 결실"이라고 규정했다. 문득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안에 부자가 된다"고 했다가 이내 "내년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결실'인가 싶다. 어찌 보면 모순될 게 없을 듯도 하다. 냉정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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