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 은행들 자체가 생사기로에 처해있다 보니, 대출창구는 사실상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실기업, 한계기업은 물론 멀쩡한 기업들까지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이 때 ‘집단폐사’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을 구해준 것은 바로 ‘보증’이었다. 정부는 보증기관을 최대한 활용, 보증비율과 보증여력을 높여주고 프라이머리CBO를 인수토록 함으로써 전방위로 중소기업을 지원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말 양대 신용보증기관(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잔액은 32조1,000억원, 2000년 말엔 33조9,000억원에 머물렀으나 2001년엔 무려 47조5,000억원으로 무려 13조원 넘게 급증했다. 정부예산과 국제기구차관을 보증기관에 출연함으로써, 중소기업 대출보증을 확대시킨 결과다.
이후 보증을 섰다가 떼이는 돈(대위변제)이 많아지고 보증기관 부실이 심각해지면서 보증확대추세는 주춤해졌다. 지난해 말 현재 양 기관의 보증잔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인 40조원선. 금융연구원 신용상 박사는 “일본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의 경우 GDP 대비 신용보증 비율이 0.1~0.3% 정도에 불과하고 대만도 3%에 못 미치는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신용보증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전면적인 보증확대정책은 한편으론 중소기업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뒀지만,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막대한 부실을 국민 부담으로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때 100%에 달했던 보증비율을 80%까지 내린 것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때문이었다.
특히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평가 및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 ‘마구잡이’ 보증이 이루어졌던 것이 문제였다. 기술보증기금은 2001년 시행한 벤처 프라이머리CBO 보증이 초래한 대규모 부실로 2005년 유동성이 고갈되는 최악의 경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요즘 같은 신용경색 하에서 중소기업 자금난을 해결하려면 ▦보증 자체는 확대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옥석은 가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삼성연구원 전효찬 연구원은 “무조건 융단폭격식 보증을 퍼부으면 다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살릴 기업을 살리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원도 “정부의 모럴 해저드에 가까운 보증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미국의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면서 보증기관의 중소기업 신용평가 시스템 등이 정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부실 처리와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보증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평가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부실화 가능성도 많이 낮아졌다. 중소기업 전문 신용정보회사도 설립됐다. 27일 신보가 발행할 5,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CBO의 경우 예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대상 업체를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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