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그의 명저 <법철학 강요> 서문에 적은 구절이다. 미네르바란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올빼미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고 아꼈다. 법철학>
올빼미는 하루가 끝나가는 황혼녘에 하늘로 날아올라 낮에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를 살펴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내 미네르바 여신에게 알렸다. 헤겔은 이 새가 한 일이 곧 철학자가 할 일이라고 여겼다.
익명의 '전문필자'가 빚은 파장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헤겔 때문에 식자들 사이에 유명해졌지만, 헤겔 스스로가 충실하게 미네르바의 올빼미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8세기 합리주의적 계몽주의 사상의 한계를 꿰뚫어 보고 역사가 지니는 의미에 눈을 돌렸다. 계몽사상이 역사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머리로 그려낸 이상에 치중하여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하고 또 실현할 수 있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한 데 반해, 헤겔은 역사는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인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고 역설했다.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헤겔이 세상에 널리 알린 미네르바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네르바를 모르면 지식인사회에서 대화에 낄 수조차 없다. 한 포털 미디어의 아고라에 올린 글들이 회자되다 글이 뚝 끊기자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돌고 있다. 미네르바가 예언한 대로 우리 경제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강만수 팀이 그 길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열을 올리는 이가 많다.
미네르바가 누구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신상정보가 돌기도 한다. 50대로 증권업에 종사했다가 기업 CEO를 지낸 이라고 하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서 1%, 아니 0.1% 안에 드는 특수계층의 경제인이라는 설도 돈다.
어느 기자는 자기 블로그에 미네르바가 '한 통신업체 여의도 본점에서 제공하는 IP를 쓰는 1971년생 남성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고도 한다. 한 시사월간지가 12월 호에 미네르바의 기고문을 실었다니까 언론사 취재망에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일반인들로서는 그저 궁금증이 쌓여갈 따름이다.
미네르바가 누군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된다. 그러나 그런 이름으로 포털에 글을 올린 이를 국가기관이 추적해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밝혀져야 한다. 지난 3일 법무장관은 국회에서 인터넷 괴담이 범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로 어느 경제신문은 정보기관이 미네르바의 신원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미네르바는 이 보도가 나간 뒤에 국가가 침묵을 명령하기 때문에 입 닥치겠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정부가 미네르바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렸다는 설도 떠돈다.
이런 보도나 풍설과는 달리 청와대의 한 담당 비서관은 어느 정부기구도 미네르바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려 한 적이 없고 침묵을 명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얼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법무장관은 미네르바의 글쓰기가 인터넷 괴담에 해당하는지, 미네르바의 일련의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야 할 것 같다.
이 정부 시대착오의 증빙일까
미네르바 신드롬은 이 시대에 대한 상징이요 지표다. 이 사건은 세간의 추측대로라면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를 방증하는 사례로 두고두고 인용될 것이지만 정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인터넷시대의 사회적 불신을 실증한 예로 또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로마신화에 의하면 진실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다 밝히고야 말며, 헤겔에 의하면 역사는 그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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