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판교를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네요."
2006년 청약 광풍 속에서 32평형 임대주택을 분양 받아 회사에서 '로또 사나이'로 불리던 홍진기(37ㆍ가명)씨. 22일 입주자 사전점검 행사(A3-1구역)에 가족과 함께 판교를 찾은 홍씨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달 말 입주 예정인 부영 '사랑으로' 아파트는 제법 그럴듯한 외관을 갖췄지만, 대로에서 현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맨살을 드러낸 채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고 주변에서 공사장 아닌 곳을 찾기 힘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10층 높이의 도로 상판이 아파트에서 불과 20m 거리를 지나는데다, 단지 곳곳이 큰 도로로 쪼개져 있어 애들을 맘 놓고 키울 수도 없을 것 같아요.(홍씨 부인)" "부모님과 생활할 요량으로 106㎡(32평)형을 분양 받고 1,300만원을 더 들여 베란다까지 확장했는데…. 모실 엄두가 나지 않네요.(홍씨)"
정부가 입버릇처럼 '주거환경이 좋아 쾌적한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고 공언해온 터라 홍씨 가족의 실망은 더욱 컸다. 대중 교통수단이 미비해 서울까지 출퇴근 할 일도 걱정이다. 노선 버스가 없어 자가용으로 출퇴근 해야 하는데, 연료비만 월 40만원 이상 들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으로 임금이 제자리거나 삭감마저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증금 2억2,000만원에 월 임대료 49만원(관리비 월평균 25만원 별도)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사실상 '육지 속의 섬'이나 마찬가지다. 더 암울한 것은 당분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성남시 교통지도과 관계자는 "판교~서울간 버스 투입을 놓고 서울시와 협상을 했지만 결렬돼 국토해양부에 중재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며 "당분간 입주민들은 자가용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나 약국, 병원, 학원 등 편의시설 이용도 여의치 않다. 판교 신도시 내 상업용지 73필지 가운데 토지 사용허가가 난 곳은 A10-1블록 인근의 근린생활용지 1필지가 유일한 탓이다.
토지공사 판교사업본부 관계자는 "올해 말로 예정됐던 사업지구 조성공사 준공이 지연됨에 따라 사용허가를 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입주자들은 당분간 인근 분당의 상업시설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공사 허가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의 별도 허가가 필요한 만큼, 편의시설이 들어서려면 1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이처럼 입주 직전의 단지 환경이 엉망인 점을 항의하기 위해 홍씨 가족이 들른 현장의 임시사무소에선 이미 창구 직원들과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은데, 임대료를 낮춰 달라", "주변 환경이 정리된 상태에서 들어와 실제 거주하기 전까지는 임대료를 내지 않겠다" 등등 불만이 쏟아졌지만, 직원들은 "우리 소관이 아니니 딴 데 가서 이야기 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법행위 조짐도 엿보였다. 입주 예정자인 최(49)모씨는 "주변 여건을 보니 입주는 1~2년 미뤄야 할 상황"이라며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임대료 부담이라도 줄이기 위해 세입자를 찾아 재임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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