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을 위한 발굴 과정에서 조선 후기 사람들이 숭례문을 통과할 때 밟았던 도로면과 민가터 등이 확인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이뤄진 각종 숭례문 공사로 묻혔던 조선 후기 당시 숭례문 주변 지역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5일 숭례문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숭례문의 가림막 내ㆍ외부 지역 800㎡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선 후기 도로면은 현재 지표면의 30~60㎝ 아래 지층에서 발견됐다. 갈색 사질토를 6~8차례, 약 130~140㎝가량 켜켜이 쌓아 바닥을 다진 후 그 위에 평균 가로 110㎝, 세로 100㎝, 두께 10㎝ 규모의 박석(薄石)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정교한 수법으로 축조돼 있었다. 숭례문을 통과하는 도로 중앙부에서는 박석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1898~1899년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제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1908년 일본 황태자 방문 당시 행렬의 편의를 위해 일제에 의해 철거된 숭례문 좌우 성벽의 기초 부분도 모습을 드러냈다. 지면에 노출된 석재 아래로 210~240㎝ 높이의 기초부가 남아있어 성벽의 축조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숭례문 내ㆍ외부에서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때 축조된 민가의 흔적이 발견됐다. 내부 동편에서 2동, 외부 서편에서 1동의 민가터가 확인됐으며, 구들시설과 배수시설도 나왔다. 민가 역시 성벽과 더불어 일제에 의해 철거된 것이다. 숭례문 내부의 현재 지표면 3m 아래에서는 조선 전기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원형 적심(주춧돌을 놓는 기초)도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0년까지 숭례문 가림막 외부 지역, 숭례문 주변 및 동서 성곽 지역을 차례로 조사해 원형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일제가 훼손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되는 숭례문 공사는 2012년 완료될 예정이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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