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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장기화에 '저출산 늪' 빠지나/ "회사 감원한다는데 둘째는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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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장기화에 '저출산 늪' 빠지나/ "회사 감원한다는데 둘째는 무슨… "

입력
2008.11.2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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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에 다니는 배모(29)씨는 1년간 사귄 사내 커플 이모(28ㆍ여)씨와 내년 봄에 결혼하려던 계획을 몇 달 미루기로 했다. 펀드에 넣어 둔 결혼자금 3,000만원이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배씨는 "회사 사정도 안 좋아서 성과급도 없다고 하니 결혼 할 엄두가 안 난다"며 "주변에 기약 없이 미루는 동료들에 비하면 그나마 예비 맞벌이인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조모(35)씨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치킨집 상황이 좋지 않아 둘째를 가지려던 계획을 접고 최근 다시 피임을 시작했다. 하루 20여건이던 배달 주문이 요새 3,4건으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가게 임대료는 물론 아파트 대출금 갚기도 벅차다. 조씨는 "딸아이가 혼자라서 안쓰럽지만 당장 가게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에 둘째는 사치 아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출산율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이 펀드 손실 등 경제 사정으로 결혼을 미루고, 기혼자들도 더욱 늘어날 양육비 부담에 출산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올들어 하향세로 돌아선 출산율이, 불황에 따른 결혼 및 출산 기피의 여파가 실제 드러나는 2010년께는 사상 최저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혼인 건수는 21만 8,100건으로 2007년 같은 기간에 비해 8,000건(-3.5%)이 줄었다. 2003년 30만5,000건에서 2004년 31만1,000건 2005년 31만6,000건 2006년 33만3,000건 2007년 34만6,000건 등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혼인 건수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바뀐 것이다.

공무원인 박모(32)씨는 "부모님은 '결혼도 재테크'라고 권유하지만 당장 신혼여행을 가려 해도 고환율에 쉽지 않은 게 현실 아니냐"며 "아직 결혼이 급한 나이도 아니어서 1,2년은 두고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 부도설이나 인원 감축 공포는 기혼자들 침실까지 불똥이 튀었다. 결혼 5년차인 전업주부 최모(34)씨는 "하나만 갖자는 남편을 설득해 둘째를 가지려 했지만 남편 회사에서 구조조정 설이 나오는 판에 내 고집만 부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불황에 잘 나간다는 콘돔 판매량도 8월 이후 껑충 뛰었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올 1~7월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에 그친 콘돔 판매량이 8월 19.3%, 9월 17.5%, 10월 16.9% 증가했고 이 달 들어선 23.7%나 급증했다.

시험관 아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부부 중에도 불임 시술을 계속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당 평균 300만원대인 시술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험관 수정을 세 번이나 시도했다 실패한 주부 김모(37)씨는 "그나마 정부의 불임시술 지원으로 버텨왔는데 재취업 할 곳은 없고 월말에 쏟아지는 청구서 막기도 벅차 다시 시도하기 겁난다"며 울먹였다.

한국의 저출산 실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간한 '2008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만 15~49세 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 수)은 1.20명으로, 조사대상 156개국 가운데 홍콩(0.96)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이는 그나마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2005년 1.08명에서 다소 회복된 것. 일각에서는 현재 추세로 가면 합계출산율이 최저치를 경신하고 1.0명 이하로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저출산 재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시근로자가구 월 평균 소득의 130% 이하인 경우 시험관수정 시술에 대해 회당 150만원(기초생활수급자 255만원)씩 2회까지 지원하던 것을 내년부터 3회까지로 늘리고, 다음달부터 임신한 여성에게 산전(産前) 검사비 20만원을 지원한다. 이밖에 무상보육 대상 확대, 양육수당 증액 지원 등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책이 여전히 미흡한 상황에서 경제 위기까지 겹쳐 더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산 대책이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는 하지만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딱히 묘안이 없다"며 털어놓았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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