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 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인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부분 발췌>부분>
저녁 하늘에 파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 빛과 어둠이 경계를 허물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공존하는 빛깔. 내가 가장 사랑하지만 닿을 수 없어 슬픈 저 '푸른 어스름'은 지상의 물푸레나무를 닮았다.
물푸레나무는 수채화가의 붓을 닮아서 자신이 가진 푸른빛을 물과 나누어 가질 줄 안다. 물이 색상도에 없는 물감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을 만난 빛은 혼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다. 어스름을 끌어안은 푸름, 파르스름한 빛깔.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 소리 내어 불러보면 서로에게 스며들기 위해 묵언정진하는 나무와 물을 따라 내 마음도 '잔잔히', '찬찬히' 그리고 '다정히' 물드는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밥을 덜어주듯 내가 가진 일부를 덜어주며 맞는 저녁 어스름을 생각해 본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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