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정부가 30여년 만에 소득세율을 인상해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일본 정부와 오바마 미국 차기 정부가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침을 이미 밝혀 부자를 겨냥한 소득세율 인상이 좌우이념을 떠나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려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 기류다.
알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발표한 예산안 초안 보고서에서 "부가가치세 2.5% 인하를 포함한 200억파운드(45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할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최고 소득세율을 40%에서 4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년 만에 소득세율을 인상함으로써 1997년 총선에 노동당 후보로 나서 승리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소득세 인상 불허' 약속을 사실상 철회했다. 보수당의 가치관을 일부 수용하며 중도좌파 노선을 걸었던 노동당이 선거 때마다 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깨고 세금정책으로 다시 왼쪽으로 클릭 조정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2011년 4월부터 고소득층이 벌어들인 연간 15만파운드(3억4,000만원) 이상 소득에 대해 소득세율을 45%로 높여 적용할 방침이다. 현재는 연봉 3만9,825파운드 이상의 소득에 대해 일괄적으로 40%의 최고 세율을 물리고 있다. 따라서 15만파운드를 넘는 소득에는 종전보다 5% 포인트 오른 세율이 적용된다. 달링 장관은 "1996년 이후 고소득자 급여가 2배 늘어났다"며 세율 인상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영국 재정연구학회(IFS)는 45% 세율을 적용 받는 사람이 40만명 정도로 전체 납세자의 1%에 국한될 것으로 예측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고든 브라운 총리, 금융회사 임원,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등이 세금을 더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운 총리의 현재 연봉은 19만파운드(4억3,000만원) 수준이다.
영국 정부의 세율 인상 취지는 금융위기로 파산 직전인 중산층과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부유층을 좀 더 쥐어짜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소득세율 인상으로 정부가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20억파운드는 경기부양자금 200억파운드에 비하면 턱없이 적고, 적용 시기도 2010년 총선 이후라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AP통신과 BBC방송은 "부유층 소득세 인상 방안이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강화는 영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일본 자민당은 소비세 증세와 함께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하는 '양극화 시정 세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단일 세율인 소비세를 올리면 저소득층의 상대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소득자 과세 강화로 이를 완화하려는 계산이다.
현재 40%인 소득세 최고세율을 상향 조정하면 누진세 체계를 완화해온 종전 정부의 세제개편방향에서 180도 선회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대표적 '부유층 세금'인 상속세도 과세 최저한도를 내리거나 최고세율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도 최고 소득세율을 현재 35%에서 40%로 상향 조정한다는 공약을 발표했었다. 오바마는 18일 공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부유층에 대한 감세혜택 축소를 경제분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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