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국민적 인기가 가장 높았던 사람은 송광수 총장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988년 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후 20년 간 송 총장 만한 인기를 누린 이가 없다. 권위적인 이미지의 검찰총장에게 '송짱'이란 애칭까지 붙여주지 않았던가. 검찰총장의 인기는 곧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와 지지이다.
하지만 송짱의 인기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功)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많은 욕을 먹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검찰의 독립성을 확실히 지켜주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청와대와 검찰 간에 소통 채널이 너무 없어서 문제가 될 정도로 검찰을 영향권 밖에 뒀다.
노 전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만 볼 순 없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영향력 아래 검찰을 묶어둘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선 그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재임기간 내내 검찰의 '하극상'에 대통령의 권위마저 조롱 당하는 험한 꼴을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검찰에 대한 평가가 예전 같지 않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오픈 엑세스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검찰권 행사가 공정하고 중립적'이라는 견해는 28.4%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다'는 견해는 71.6%나 됐다.
비슷한 시기에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전국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신뢰하는 집단 순위에서 검찰이 4.4%의 지지를 얻어 경찰(4.6%)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법의 최고 집행기관이자 사정의 중추를 자임하는 검찰이 이 정도의 신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법 집행기관의 공정성이 의심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치 확립'을 아무리 외쳐봐야 씨알이 먹힐 리 없다. 오히려 반감과 불신을 키울 뿐이다.
24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간부회의에서 밝힌 소회에는 이 같은 검찰의 고민이 묻어있다. 임 총장은 BBK사건, 촛불시위, 선거사범 수사, KBS (정연주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 광고주 협박 사건, 사정(司正) 수사 등 그 동안의 주요 사건들을 일일이 언급한 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한 건도 쉬운 것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관점을 달리할 수 있는 여러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책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검찰을 흔드는 외풍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검찰은 전체 사건의 1%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스스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 총장은 그 때마다 법과 원칙,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이는 검찰의 주요 사건 처리에 국민이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해답은 이미 검찰 스스로 알고 있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과 맞설 때 국민이 지지를 보낸다는 사실 말이다. '송광수 검찰'이 노 정권에 맞섰던 것은 정권이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보수'의 보루(堡壘)인 검찰과 노 정권은 코드가 맞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MB정부와 검찰은 생리적으로 삐걱거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가. 임 총장 말대로 검찰은 어느 때보다 "통일되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역설적으로 검찰 불신의 요인이라는 사실을 검찰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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