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시절 장신슈터로 위력을 떨치던 선수가 있었다. 194cm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확한 3점포는 프로팀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는 서울 삼성에 1라운드 지명되면서 화려하게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화려한 주전 라인업에 가려 출전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한 그는 첫 시즌을 마친 뒤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상무는 평균 1.7점 0.9리바운드의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온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 임대로 꽃핀 선수 인생
우승연(24ㆍ울산 모비스). 좌절의 늪에 빠져 있던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비쳤다. 원 소속팀 삼성이 그를 모비스에 1년 동안 임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상급 포워드 이규섭에 대형 신인 차재영, 상무에서 제대하는 김동욱까지 삼성의 포워드라인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우승연에게 모비스행은 하늘이 준 기회나 다름 없었다. 우승연은 올시즌 모비스가 치른 10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경기당 평균 23분을 뛰며 6.8점 1.4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모비스의 핵심 전력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우승연은 올시즌을 마치면 상무 입단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준주전급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의 상무 입성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1년의 임대가 그의 농구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것이다.
임대제도의 수혜자는 또 있다. TG삼보(현 동부)의 후보였던 신종석은 지난 2005~06시즌 오리온스로 1년간 임대됐다. 2005년 자유계약선수(FA)자격을 획득한 신기성이 KTF로 이적하면서 TG삼보는 보상선수로 손규완을 지목했고, 손규완과 포지션이 겹치는 신종석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그러나 신종석은 2005~06시즌 오리온스에서 54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주전자리를 단숨에 꿰찼다. 평균 5.2점 3.0리바운드로 자신의 '최고 시즌'을 보낸 신종석은 FA 자격을 획득한 뒤 안양 KT&G와 전년도 연봉에서 42.9% 인상된 액수에 5년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
■ 왜 KBL만 임대선수가 존재하나?
선수를 일정 기간 동안 빌려주는 임대제도는 악용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는 임대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프로농구 역시 '임대선수'라는 제도는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나 구단간의 합의에 의해 선수와 구단이 '윈-윈'하는 임대제도가 사실상 시행되고 있다.
악용을 방지하면서 임대제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근간은 KBL 선수등록규정 제19조 3항이다. KBL은 지난 2001년 '이적 등록 후 1년이 경과하지 않은 전 소속구단으로의 재이적 시 이적 등록이 제한된다'는 내용의 선수등록규정을 신설했다.
'1년'이라는 재이적 제한기한을 명시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선수를 빌려주고 부정한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시즌 후반 최하위로 쳐진 A팀이 상위팀에게 포스트시즌 동안만 주전 선수를 빌려주고 다음해 신인 지명권을 양도 받는 식의 편법은 불가능한 것이다.
임대제도는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구단은 샐러리캡을 맞추고 엔트리를 구성하는 데 숨통을 틀 수 있고, 선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구단에 가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난 2005년 신종석을 오리온스로 임대했던 과정을 지켜봤던 동부(당시 TG삼보)의 이흥섭 운영홍보팀장은 "향후에 활용이 예상되는 선수인데 올시즌에는 포지션이 중복되고 엔트리가 꽉 차는 등의 이유로 쓰기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며 "임대제도는 이런 선수들에게 다른 팀에서 플레이 기회를 줄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부는 올해 상무에서 제대한 슈터 이상준을 서울 SK에 1년간 임대했다. 김주성의 연봉이 대폭 인상(7억1,000만원)되면서 샐러리캡의 압박도 있었고, 슈터 자리에는 강대협 이광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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