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가지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입니까. 요즘 같은 경제위기야말로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48)가 한화그룹이 개최하는 '한화 드림 컨퍼런스' 강연을 위해 방한했다. 라시드는 24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위기는 그간 품질보다 브랜드에만 집착해온 행태에 대한 반성의 기회"라면서 "브랜드에만 기대서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제품을 내놓지 않는 회사들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시드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집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했다. 무대 디자이너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디자인에 대한 꿈을 키웠고, 캐나다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1993년 뉴욕으로 갔으나 일거리를 얻지 못해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화장실도 주방도 없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하루 1달러로 1년을 버텼다. 100곳의 회사 문을 두드린 끝에 한 건의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바로 그 프로젝트에서 나온 라시드의 부엌용품 디자인이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됐고, 이 상품이 한 해 동안에만 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면서 그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라시드는 이후 아우디, 소니, 이세이 미야케 등 자동차부터 향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품을 디자인해 세계적 스타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디자인한 1만원대의 가르비노 쓰레기통은 세계적으로 500만개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다.
한국에서도 그는 한화그룹의 CI, 현대카드 디자인 등으로 친숙하다. 그의 디자인은 밝고 경쾌하다. 흐르는 듯한 유기체적 형태에 오렌지, 핫핑크, 라임 같은 알록달록한 '캔디 컬러'를 많이 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도 양복과 양말, 운동화까지 모두 분홍색으로 맞춰 차리고 나온 라시드는 "기능도 중요시하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보는 사람을 슬며시 미소짓게 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시드는 '지나친 20대 여성 취향'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좋은 디자인에는 성별도 계층도 연령도 없다"고 답했다. 그는 "디자인과 민주주의를 합친 '디자이노크라시(designocracy)'를 신봉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좋은 디자인은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눈은 1만6,000가지 이상의 색깔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디자인을 통해 그런 감각적 경험을 더욱 격상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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