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강원 정선군 신동읍 조동8리 함백역 앞 광장. 한때 탄광촌으로 번성했던 마을의 상징인 이 곳에서 신명 나는 잔치가 펼쳐졌다. 주민들의 애환이 깃든 역사(驛舍)가 철도당국의 무신경한 행정으로 헐린 지 2년 만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꼬마부터 노인까지 마을 주민 300여명은 서로 얼싸안고 웃었다. 더러는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함백역은 1957년 3월 함백선(영월~함백) 개통과 함께 정선군에서 첫 철도역사로 문을 열었다. 당시 석탄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함백광업소 이름을 딴 것인데, 개통식에 상공ㆍ교통부 장관,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찾아올 정도로 주목을 끌었다.
'검은 풍요'의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들이 눈처럼 날리던 석탄가루 속에서도 희망을 꿈꿨던 광업소가 93년 석탄산업 사양화로 문을 닫았다. 함백역도 역무원 없는 간이역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기차여행 마니아들이 다섯 손가락에 꼽는 '가볼 만한 간이역'으로 명맥을 이어왔는데, 2006년 10월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이어 역사가 통째로 헐리고 말았다.
반세기 가까이 동고동락 한 역사를 잃고 망연자실 하던 주민들은 "그래, 우리 손으로 다시 짓자"며 팔을 걷어붙였다. 철거 일주일 만에 '함백역 복원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장을 맡은 진용선(47) 정선아리랑학교장은 "함백역과 안경다리 등을 엮어 역사문화 현장으로 되살리려던 참이었는데, 역사가 순식간에 사라져 참담할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전국 각지의 출향 인사들은 물론, 함백역의 추억을 간직한 나그네들도 정성을 보탰다. 추진위에 따르면 약 250명이 십시일반 3,40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실제 복원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 한 이들도 140명에 달했다.
정선군도 함백역 복원 운동에 동참해 옛 역사 터를 내주었다. 올 6월 복원의 첫 삽을 뜬 함백역은 이날 지상 1층, 연면적 61.49㎡ 규모의 옛 모습 그대로 주민들 앞에 섰다. 역사가 사리진 지 2년 1개월 만이다. 마을 주민은 "대한민국의 산업화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을 주민들의 뜨거운 열기로 힘겹게 되살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주민들은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함백역이 있는 조동8리를 '제1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한 것. 새 역사는 역사(歷史)기록관으로 태어났다.
김미향(30) 기록연구사는 "1940~70년대 번성했던 탄광촌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물은 물론 함백역이 세워진 이후 2006년 철거에서 복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바람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함백역이 이름뿐인 역이 아니라, 열차가 서고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간이역의 기능을 되찾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역무기능을 되살리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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