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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B 팔레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완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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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B 팔레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완역 출간

입력
2008.11.26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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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국학 대부'로 불리는 제임스 B 팔레(1934~2006) 교수의 대표작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전2권ㆍ산처럼 발행)이 출간 12년 만에 한글로 번역돼 나왔다.

팔레 교수는 1968년 흥선대원군 연구로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여년 동안 워싱턴대에서 한국학을 개척한 학자다. 브루스 커밍스, 카터 에커트, 돈 베이커 등 한국학의 권위자들이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연구기금을 거부하고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2002년부터 2년 동안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은 맹렬한 비판의식으로 인해 출간 초부터 논쟁의 중심에 섰던 저작이다. 팔레는 이 책에서 조선 중기 실학자 유형원(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隨錄)> 을 통해 조선의 경세론과 변화상을 짚어나간다. 그러나 실학을 키워드로 조선 중ㆍ후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한국인의 상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의 작업은 과격할 정도로 철저히 조선사상사를 객관화, 실학 혹은 유교적 경세론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학에서 근대의 씨앗을 찾으려는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 지지자들로부터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우선 실학에 씌워진 '근대성'이라는 아우라를 깡그리 벗겨낸다. 유형원을 비롯한 실학자들을 근대의 선구자로 보는 20세기 이후의 시선에 대해 그는 "유교적 경세론을 현대적ㆍ서구적 실증과학으로 잘못 해석한 시대착오적 판단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팔레는 식민사학에서 벗어나려는 한국 학계의 노력은 긍정하지만, 그것이 민족주의 혹은 진보ㆍ보수의 틀 안에서 맴돌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오류를 경계한다. 그가 조선을 투영해 보는 틀로 <반계수록> 을 선택한 것도, 이 책이 전통적 유교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팔레는 실학의 합리성과 경험주의가 엄격한 인식론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유학자들은 사회의 폐단을 비판하면서도 고대 중국의 경전에 등장하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교조주의적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유형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6권 13책에 이르는 <반계수록> 을 분석한 팔레의 결론은 "감각을 통해 인식된 자료만이 믿을 만한 정보라는 생각, 고전의 권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학을 만들 만한 생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18세기 후반 기독교라는 이단이 밀려오기 전까지 실학은 하나의 유교적 대안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초점이 조선의 전근대성, 실학의 복고성 비판에 맞춰진 것은 아니다. 팔레는 1,500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결과를 통해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조선의 신분, 토지, 병역, 관제, 제정 등 전반적인 개혁의 흐름을 살핀다.

<반계수록> 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교적 경세론은, 철학적 전근대성에도 불구하고 그 개혁적 흐름의 방향타로 기능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팔레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유교가 어느 정도 적응했는가, 문제와 갈등에 대해 얼마나 창조적으로 대응했는가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체 인구에서 노비(원문에는 '노예ㆍslave'로 표기)의 비중이 30%를 훨씬 넘은 18세기 중반까지 조선은 노예제 사회였다"고 서술해 출간 당시 파란을 일으켰던 부분은 번역판의 2부 '사회 개혁: 양반과 노비'에 포함돼 있다.

부의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유형원의 지적과 19세기 전제 개혁정책의 상관관계(3부 전제개혁), 18세기 통화 팽창과 위축의 순환(6부 재정개혁과 경제) 등 팔레는 조선의 각종 제도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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