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9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고통을 주고,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데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사죄 드립니다."
25일 오후 2시30분께 광주지법 301호 법정.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 공안조작사건으로 불리는 '오송회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인 이한주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 선고와 함께 법원의 과거 잘못된 재판을 반성했다. 이 판사의 발언에 방청객들이 귀를 의심한 듯 잠시 술렁였다.
이 판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피고인들쪽에 잠시 시선을 주더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떠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자유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이어갔다. 순간, 공판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피고인석과 방청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법원을 대신한 이 판사의 '반성'은 계속됐다. "앞으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 "법대(法臺) 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 말라는 소신으로 판사직에 임하겠다. 관료화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이광웅(1992년 사망)씨 등 군산 제일고 전ㆍ현직 교사들이 4ㆍ19 기념행사를 치르고, 시국토론을 하며 김지하 씨의 '오적'을 낭송한 모임을 공안당국이 이적단체로 간주한 사건.
오송회라는 이름은 다섯 명의 교사가 소나무 아래에 모였다는 데서 경찰이 붙인 것이다. 당시 전주지법은 3명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6명은 선고유예했으며 광주고법은 9명 모두에게 징역 1~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날 재심 재판부는 "이씨 등에 대한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 진술조서, 진술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고문, 협박, 회유에 의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또 "이씨 등은 당시 법정에서 '전기통닭구이' 등 고문 이야기를 하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지성인이 몇 대 맞았다고 허위 진술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들을 처벌했다"고 털어놓았다.
공판이 끝난 직후 법정 경위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던 피고인과 가족들을 제지하려 하자 이 판사는 "말리지 마라"고 말한 뒤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오송회 사건 주범으로 몰렸던 조성용(71)씨는 "재판장의 발언에 감명을 받았다"며 "오늘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와 법의 존엄성,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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