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0월 우리나라 수출 품목 1위는? ①선박 ②휴대폰 ③자동차 ④반도체 ⑤석유제품
답은 5번이다. 정부 통계를 보면 석유제품은 올해 1~10월 총 344억달러 어치가 수출됐다. 다음은 선박(342억달러)과 일반기계(321억달러), 휴대폰(314억달러), 자동차(294억달러)의 순이었다. 반도체는 293억달러로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다.
동해 가스전 등에서 소량의 원유가 나오긴 하지만, 사실상 비산유국인 우리나라에서 석유 제품이 수출 1위에 오른 것은 고유가의 덕이 컸다. 7월 한 때 배럴당 140달러까지 돌파한 국제 유가에 힘입어 석유 제품 수출 단가가 크게 오른 것이다.
물론 이런 고유가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정유업체들이 내수 시장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려 꾸준히 설비 투자를 해왔기에 가능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석유 정제 능력은 하루 285만5,000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석유 제품을 수입하는 나라는 무려 50개국에 가깝다.
■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와 고도화 시설
한국 정유업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 SK에너지의 울산 단지는 단일공장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부지에 원유의 도입부터 정제, 석유제품 생산, 운송, 유화제품 생산 등의 모든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장승포항으로 들어온 유조선의 원유가 울산 단지를 한번 거쳐 석유제품으로 만들어진 뒤 곧 바로 다시 전 세계로 수출이 되는 시스템이다.
고도화 설비도 빼 놓을 수 없다. 원유를 1차 정제했을 때 나오는 저가의 벙커C유를 재처리해 고가의 휘발유와 경유 등을 생산하는 시설로, 업계에선 '지상유전'으로 불린다. 9월 울산 남구 용연동에서 준공식을 가진 SK에너지 제3고도화 설비는 생산 규모가 하루 6만배럴에 달하는데다 전량 수출되고 있다.
이처럼 고도화 설비에 공을 들인 SK에너지는 올해 3분기 매출 14조3,162억원과 영업이익 7,330억원, 순이익 4,71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115%, 영업이익은 75%, 순이익은 40%나 늘어났다. SK에너지의 올해 누적 수출액도 21조원에 달해 국내 기업 중엔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연간 수출액 20조원을 돌파했다.
■ 석유 이후 대비, 신재생에너지 투자
그러나 언제까지 정유업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석유 수요 감소 탓에 국제 원유보다 이를 정제한 휘발유 가격이 더 낮은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업체들은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은 GS칼텍스는 서울 성내동의 '신에너지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신기술 연구ㆍ개발(R&D) 및 상용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에선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결합시켜 물을 만들 때 발생하는 전기 에너지를 활용하는 연료전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사실 GS칼텍스는 1989년부터 연료전지 연구에 매진해왔다. GS칼텍스의 자회사인 누리셀과 함께 차세대 이차전지인 '박막전지'를 개발한 것도 주목된다. 환경 친화적일 뿐 아니라 폭발의 위험도 전혀 없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K에너지도 2010년까지 '저탄소 녹색성장'과 관련된 R&D와 상업화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아주대와 이산화탄소를 활용,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신기술에 대한 특허이전 및 연구협력 계약을 맺었다.
저가의 석탄을 석유로 바꾸는 기술과 그린카의 핵심 기술인 리튬 배터리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우뭇가사리로 바이오에탄올은 물론, 차세대 바이오 연료인 바이오 부탄올을 생산하는 기술도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 제품이 수출 1위 품목에 오른 것처럼,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미래의 수출 1위 품목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유가 떨어졌지만 신재생 에너지 투자 확대할 것"
"어려울 때일수록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ㆍ개발과 투자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것이 SK의 전략이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와 투자도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실 신재생에너지와 국제 유가의 관계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에 비교된다. 유가가 폭등(오일쇼크)할 때에는 고가의 석유 대체재로 관심이 커졌다가, 유가가 떨어지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게 지금까지 신재생에너지의 역사였다.
그러나 구 사장은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위기 의식이 과거와는 전혀 딴 판"이라며 "국가 정책적으로도 최근처럼 강도 높게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 사장은 이어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자동차 연비가 갤런당(약 3.78ℓ) 25마일 이상 되도록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내연기관 엔진으로 이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자동차 업계에 신재생에너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밝혔다.
구 사장은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연구진과 창의력을 갖고 있지만, 최고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 우리의 성장동력으로 확보할 것"이라며 "리튬 이온전지 분야에선 적어도 세계 톱3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부에 바란다
정유업계는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응하고 수출 채산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선 고도화 시설을 늘려가는 게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도화 비율은 불과 27%. 미국(76.3%)은 물론 일본(39.8%)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고도화 설비는 일반 정제 시설보다 통상 3배가 넘는 막대한 투자금이 든다. 현재 진행 중인 정유업계의 고도화 설비 투자액은 무려 10조원 이상.
따라서 정유업계에선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2012년까지 세액공제 제도를 연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질유 분해 탈황시설 투자 때 투자액의 법인세를 10% 감면하는 제도가 내년이면 만료된다. 세액 공제율이 10%에서 20%로 확대된 만큼, 업계는 기존 투자금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 환경ㆍ오염 방지 설비 투자 때 투자액의 7%를 세액공제해 주는 제도도 2009년에서 2012년까지 연장돼야 한다는 게 업계 요청이다.
일각에선 1%인 원유 할당 관세를 아예 없애는 방안도 정부가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원유에 대한 관세가 사라지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ℓ당 4~6원 정도 떨어질 있을 것"이라며 "포기되는 세수 1원당 1.258원의 국민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비산유국으로는 우리나라만이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점도 이 같은 요구에 힘을 싣고 있다.
아울러 국내 액화석유가스(LPG) 제조업체들에 대한 역차별이 해소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LPG를 만들기 위해선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데 원유에 대해서는 할당관세(1%) 및 석유수입부과금(ℓ당 16원)이 부과되는 반면, LPG를 수입할 땐 관세도 없고 석유수입부과금도 부과되지 않고 있다.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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