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간 김훈(60)씨의 이름자 앞에 흔히 붙는 관사는 '소설가' 였다. 그간의 정력적인 소설 쓰기로 내로라하는 문학상을 잇달아 휩쓴 김씨의 행보는 그것 자체로 한국소설의 행복이었으나, 한국어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하는 탐미적 문장으로 개성적인 사유를 벼려내는 그의 에세이를 편애하는 독자들에게 그 몇년은 기다림 곧 목마른 조바심의 시간이기도 했다.
<밥벌이의 지겨움> (2003) 이후 김씨가 5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바다의 기별> (생각의나무 발행)은 시인, 소설가, 사진작가, 여행가, 교수 혹은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비슷비슷한 산문집에 심드렁해진 독자들의 기갈을 단숨에 해소해줄 만한 글들로 풍요롭다. 바다의> 밥벌이의>
책에는 김씨가 대학 등에서 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 2편을 포함, 모두 13편의 산문이 실려있다. 올해로 갑자를 일순한 그의 인생경험을 자양분 삼은 에세이들은 더욱 힘차고 원숙해져 있다.
언어와 현실, 언어의 효용성, 글쓰는 자의 태도 등속의 것들을 소재 삼은 몇몇 글에서는 필경(筆耕)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뚜렷하게 솟구친다.
예컨대'회상'은 말과 글을 부리는 자로서 김씨가 고수하는 엄정한 태도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그는 여기서 '꽃은 피었다'로 시작하는 장편 <칼의 노래> 의 첫 문장을 '꽃이 피었다'로 고치기까지 절치부심했던 과정을 소개한다. 칼의>
그는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라고 변별한다. 그것을 예로 "문장 하나 하나에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씨의 이러한 언어관은 세대, 정파, 지역으로 갈라져 소통 부재의 상태에 다다른 우리 현실에 대한 비판과도 잇닿아있다. 그가 파악하기에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이유는 우리가"의견과 사실을 뒤죽박죽해서 말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에세이 '말과 사물'에서 언어의 존재 이유가 소통일진대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견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의견인지, 혹은 아무런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그저 나의 욕망을 지껄이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하면" 언어는 소통에 기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신념의 언어'보다는 '과학의 언어'로 사유할 것을 주문한다.
그의 이번 산문집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전적인 글이 다수 실려있다는 점. 그는 세상과 불화하는, 글장이의 DNA를 물려준 아버지(소설가 고 김광주)씨의 관을 묻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가부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부장이었던 것이었다"('광야를 달리는 말')고 회고하기도 하고,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순한 서울말을 좋아"했고, "이웃집 아낙네들에게도 말꼬리가 분면한 존댓말을' 썼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고향과 타향')을 떠올린다.
이런 글들은 이순에 다다른 작가의 생물학적 나이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그의 다음 작업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그간 역사적 사실을 소설적 모티프로 삼았던 김씨는 다음 소설에 대해 "내가 겪은 당대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예고했다. 남한산성> 현의> 칼의>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이야기로 시대에 대한 발언을 하겠다는 결심의 자락들이 이번 산문집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쓰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그것은 한국현대사의 고통과 맞물려 있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며 "아직 백분의 일도 쓰지 못했다. 겨울 동안에는 소설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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