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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사랑' 나누는 아마추어 마라토너 박현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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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사랑' 나누는 아마추어 마라토너 박현용씨

입력
2008.11.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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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에 1원. 누군가는 "고작 그 것밖에 안 되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 푼 두 푼 쌓인 돈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돕는 연탄으로 거듭날 때 '고작 그 것'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서울 종로구 종로4가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는 박현용(37)씨 이야기다. 그는 2006년부터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1m에 1원씩 자신이 뛴 거리만큼 '사랑의 기금'을 적립해왔다. 풀 코스인 42.195㎞를 다 뛰면 4만2,195원을 모으는 것이다.

23일 종로에서 만난 박씨의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다부졌다. 이봉주 황영조 등 마라토너들처럼 팔ㆍ다리 가늘고 마른 몸매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가슴근육은 유도선수 왕기춘을 연상케 했다. 머리 숱이 적어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와 투박한 억양은 악역에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 도중 개구쟁이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성격은 좋으신 분 같은데 뚱뚱한 사람은 별로예요."

5년 전 소개팅에서 만나 호감을 가졌던 여성이 주선자를 통해 전해온 말이다. 충격이 컸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당시 박씨는 키 172㎝에 몸무게가 100㎏에 육박했다. 그는 바로 헬스클럽을 찾았고, 주 6일을 새벽 6시부터 2시간 동안 뛰었다. 6개월이 지나자 몸무게가 70㎏대로 내렸고 제법 근육도 붙었다. "덕분에 무척 건강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여자분, 고맙죠."

2006년 어느 날 친구 이준섭(37)씨와 한강 둔치를 찾은 박씨는 또 한번의 전환을 맞았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을 보고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 해 10월 하프 마라톤(21.097㎞)을 뛰었고, 한 달 후 입문 두 달 만에 풀 코스에 도전했다.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며 겨우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4시간 14분 39초. "너무 성급하게 풀 코스를 도전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행복했다." 그는 첫 풀 코스 완주의 감격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박씨는 지난해 초 문득 달리는 기쁨 위에 무언가 의미를 하나 더 얹고 싶어졌다. 친구 준섭씨와 "우리, 대회 출전해서 뛴 거리만큼 돈을 적립해서 좋은 일에 쓰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는 2월 42.195㎞ 마라톤을 시작으로 풀 코스 4회, 하프 코스 4회, 14.5㎞의 산악마라톤 1회, 100㎞ 울트라 마라톤 1회 등 총 39만9,863m를 뛰었다. 준섭씨가 달린 거리는 34만5,361m였다. 지인들도 이들이 달릴 때마다 성금을 보탰다. 2006년 참가한 대회까지 합해 총 132만3,000원을 적립했다.

박씨는 이 돈으로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상암동, 아현동 등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 열 분 집에 연탄 3,000장을 날랐다. 그는 "한 할머니께서 '제발 잘 쌓아달라'고 부탁하며 우셨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어렵게 들여놓은 연탄이 무너져 고생하셨다더라"면서 "400원짜리 연탄 한 장이 이분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박씨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25만5,071m를 뛰는 데 그쳤다. 준섭씨도 발목 부상으로 많이 뛰지 못했다. 적립금은 총 90여만원. 연탄값도 1장에 450원으로 올랐다. 다음 달 14일 독거 노인들에게 2,000장의 연탄을 전달할 예정인 그는 "많이 못 뛰었고 연탄값도 올라 작년보다 적다"며 "대회에 더 자주 나갔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달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박씨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고 했다. "제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려 모금을 할 거에요. 이왕 하는 것, 많은 사람이 동참해서 연 1,000만원 정도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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