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콘웰 지음ㆍ김형근 옮김/크리에디트 발행ㆍ640쪽ㆍ2만9,000원
과학자는 인류의 적인가 아니면 동지인가. 1920~50년대의 과학사를 연구한 저자는 히틀러 시대의 과학자들을 통해 그 답을 찾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 시기 세계 과학의 중심은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의 지평을 연 막스 플랑크, 20세기를 독일의 시대로 만든 화학자 프리츠 하버 등이 독일인이었다. 그리고 과학이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히틀러가 그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책에는 히틀러 치하를 살았던 과학자들과 그들의 연구 업적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앞부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독일이 이룬 과학적 진보를 다룬다. 그 기반 위에서야 히틀러 출현 이후의 전쟁과 과학의 흐름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 연구와 생물학 정보가 독가스 개발과 인종위생학의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 다윈과 라마르크의 이론이 나치의 이른바 '사회생물학'으로 변용되는 궤적이 그려진다.
이 책의 목적은 제3제국 시기 나치에 동조한 과학자들을 단순히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과학자들의 인생유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인가?' '왜 과학자들에게만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인가?' '히틀러 치하의 과학자들만 잔인한 것일까, 핵폭탄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들에겐 면죄부를 줘도 되는 것인가?'
저자는 핵폭탄 개발과 관련한 역사의 추악한 이면을 세세하게 추적, 이러한 질문의 해답에 접근한다. 종전 후 독일 핵물리학자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팜홀(영국 정보부 소유 가옥) 기록'은 역사적 면죄부를 받았던 과학자들의 진실을 보여준다. "하이젠베르크나 오토 한은 핵폭탄 프로그램을 사보타주함으로써 히틀러에 저항했다는 주장이 흘러나왔다… 팜홀에 억류된 과학자들의 대화를 분석해 보면, 이들이 거짓 변명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주장을 펴기 위해 얼마나 의도적으로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508쪽).
히틀러 시대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결국 21세기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학 전쟁의 안전지대일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의 세계를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남아 있는 공격력을 이용해 상대편까지 전멸시키는 '상호 확증 파괴 전략'의 시대로 규정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나치 시대 이상으로 전쟁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저자는 현대에 와서 더 커진 과학의 책임을 과학자 개인의 '양심'에 지운다. "무척이나 힘겹고 불합리한 기준"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도 감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대한 히틀러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하고픈 말은 결국 그것이다. "나치 정권 혹은 자본주의와 결탁한 과학자들이 있는 반면, 그 모든 악의와 결별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 과학자가 존재했음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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