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과 배신으로 점철된 인류사의 전모를 아는 존재는 과연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47)의 <신> (열린책들 발행)은 전지적 시야로 인간세계를 굽어보는 단 하나의 존재, 신이 있다는 상상을 한 축으로, "인간은 항상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인간-천사-신'이라는 위계가 있다"는 관념을 또다른 축으로 전개되는 장편소설이다. 신>
주인공은 베르베르의 전작 <타나토노트> (2000)에서 천사로 영혼계 탐험에 나섰던 미카엘 팽송. 이번 작품에서 그는 신으로 승격될 수 있는지를 다투는 '신(神) 후보생'으로 등장한다. 천사계를 떠난 미카엘이 시험에 드는 곳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기괴한 환경을 지닌 아이덴이라는 이름의 고도(孤島)다. 타나토노트>
그곳은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가 시험 탈락자의 목숨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미카엘과 경쟁하는 신 후보생들은 모두 144명인데 면모는 쟁쟁하다. 은막 스타 마릴린 몬로, 가수 에디트 피아프, 비운의 댄서 마타 하리, 작가 생텍쥐페리, 화가 폴 고갱, 무정부주의자 피에르 조제프 푸르동, 화학자 마리 퀴리 등등.
소설은 신의 지위를 얻기 위해 신 후보생들이 일종의 가상지구인 '18호 지구'에 문명을 건설해가는 이른바 'Y게임'을 진행하며 논리 공방을 펼치고 평가자인 다양한 신들이 이에 강평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천사가 신이 되기 위해 후보생으로서 경쟁한다는 발랄한 문학적 상상력에, 그리스ㆍ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불교 등 다양한 신화와 종교에 기반한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인류문명의 전개를 재현하는 솜씨가 더해지고,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긴박한 사건 전개가 잘 버무려져 책장을 넘기는 손을 보챈다.
백미는 주인공과 제각각 당대를 대표할 만한 신 후보생들 간에 펼쳐지는 논리 대결이다. 큰 축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돌고래족을 창조한 주인공 미카엘과, 무력을 절대시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가진 쥐족을 창조한 푸르동의 대결이다. 전자가 인류문명 발전의 원동력을 '사랑의 힘'으로 바라보는 반면, 후자는 '지배의 힘'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긴장은 팽팽하지만, 작가 베르나르가 어느 편에 서 있는가를 살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소설 속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쥐족은 승승장구하는 반면, 돌고래족은 영토를 잃고 뿔뿔히 ?어져 지혜와 영감을 전달하는 대가로 다른 씨족들에게 구명(救命)하는 처지다. 하지만 작가는 "과연 누가 피해자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아마 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불과 칼 때문에 사라진 문명들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이라며 스스로의 문명관을 드러낸다.
베르베르는 <개미> <뇌> <나무> 등 내놓는 작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에서만 5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을 반영하듯, 작품 속에 한국인 인물을 꽤 비중있게 배치했다. 주인공이 천사 시절 돌봐줬던 인물이 환생한 '은비'라는 재일 한국인 소녀다. 나무> 뇌> 개미>
위안부 출신의 외할머니를 둔 소녀로 '조센진'이라는 일본인들의 놀림을 실력으로 극복한다. "어떤 시련이든 우리를 죽일 정도가 아니라면 그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는 거야" "가해자들은 우리 피해자들 때문에 불편해하지. 우리는 그것조차 우리의 잘못으로 떠안고 용서를 구해야 해" 같은 은비 어머니의 말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무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배하고 잊혀져간 민족들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겠다는 베르베르의 의도를 엿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준비에서 출간까지 9년이 걸렸다는 <신> 은 프랑스에서 이미 35만부 이상 팔려 <개미> 와 <빠삐용> 을 능가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두 권은 <신> 3부작 가운데 1부에 해당한다. 2부와 3부는 내년 중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신> 빠삐용> 개미> 신>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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