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슬랙 지음ㆍ권혁정 옮김/나무이야기 발행ㆍ365쪽ㆍ2만원
록펠러, 카네기, J P 모건 등과 함께 19세기 미국 경제계를 풍미했던 자본가들 가운데 헤티 그린(1835~1916)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사망 당시 그녀의 재산은 1억 달러, 현재 가치로 160억 달러가 넘어 2007년 포브스에 의해 '역사상 최고의 부를 이룬 여성'으로 꼽혔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기네스북에 '이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구두쇠'로 기록됐을 뿐 100년도 지나기 전에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전기 작가인 저자는 수많은 자료를 뒤지고 증언을 모아,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없었고 '강도자본가 시대'라고 불렸던 험악한 시절에 남성들을 제치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일궈낸 탁월한 자본가로서 해티의 삶을 복원해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경제신문을 읽어주며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열세살 때부터 가업인 포경회사의 사업을 익힌 그녀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미국 국채와 철도사업, 금융업 등에 투자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이 과정에서 철도산업의 거두 콜리스 헌팅턴과 명승부를 펼쳐 '여성 시민 케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고, 1907년 공황 당시에는 뉴욕시에 거액을 빌려줘 재정파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1905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자신의 투자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격이 낮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시기에 사들입니다. 그러고서 그것을 엄청나게 큰 다이아몬드처럼 고이 간직합니다. 가격이 올라가서 사람들이 사고 싶어 안달이 날 때까지 계속 갖고 있습니다. 내가 소유한 주식은 단순히 투자로 사들인 것이지, 절대 투기가 아닙니다." 많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온갖 부정을 저지르며 부를 축적했지만, 헤티는 자신만의 투자법으로 부를 일궜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퀘이커교도였던 그녀는 절약정신을 철저하게 실천, 구식 드레스에 낡은 손가방을 들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빈곤층이 사는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를 전전했다. '월스트리트의 마녀'라고 불릴 만큼 그녀가 휘두르는 돈의 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외모는 골목 잡화상이나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네의 모습이었다.
책은 황색언론으로부터 '수전노'라는 평가를 받은 헤티의 자본가적인 면모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헤티의 막대한 재산은 그녀의 딸이 죽은 후 유언에 따라 헤티가 모르는 사람들과 학교, 도서관 등에 분배됐다고 한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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