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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 피에르 리비에르' 미셸 푸코가 재구성한 19세기 존속살인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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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 피에르 리비에르' 미셸 푸코가 재구성한 19세기 존속살인 실화

입력
2008.11.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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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지음ㆍ심세광 옮김/앨피 발행ㆍ532쪽ㆍ2만3,000원

"솔직해지자. 모든 것은 경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셸 푸코(1926~1984)의 고백이다. 20세기 최고 지성의 한 사람인 그를 매혹에 빠뜨린 것은, 뜻밖에도 한 살인범의 존재였다. 살인사건은 1835년 6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일어났다. 피에르 리비에르라는 이름의 젊은 농부가 낫으로 모친과 누이, 남동생을 살해한 사건이다

. 그가 옥중에서 남긴 수기가 13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푸코를 중심으로 한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연구자들의 사로잡았다. 197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의 제목 <내 어머니와 누이와 동생…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는 바로 그 수기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재판 서류를 비롯해 법의학 감정서, 사건을 다룬 당시의 신문기사 등 수집된 일체의 소송기록이다. 짙은 바탕의 종이에 인쇄된 100여쪽은 리비에르의 수기다. 문맹에 가까워 철자법과 구두점이 엉망인 리비에르의 수기를 교정 없이 당시 출간된 모습 그대로 수록했다. 2부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이 사건을 분석한 논평으로 구성돼 있다. 1971년 푸코의 제안으로 시작돼 2년여에 걸쳐 진행된 비공개 세미나의 결과가 2부의 내용을 채운다.

연구의 핵심 테마는 정신 감정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의학적 이야기가 다는 아니다. 애초에 푸코가 이 소송기록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 사건에서 1835년 당시의 정신의학, 재판제도, 루이 필리프 왕정시대의 정치 정세가 3파전의 양상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푸코는 그 흥미진진함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특이한 구조적 장치를 이 책에 깔아뒀다. 즉 책은 리비에르의 범행부터 재판, 감형에 이르는 자료를 단순히 시간 순으로 배열한 듯하지만, 마치 극의 진행을 보는 것처럼 사건의 각 요소가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며 전개된다.

이 책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 (1961)와 <감시와 처벌> (1975)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그의 지적 여정에서 중요한 한 단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정신의학과 사법 영역의 연구를 통해 정치 참여의 강도를 높여가던 푸코가 이론과 실천의 경계에서 복잡하게 고민하는 흔적을 이 책에서 목도할 수 있다.

하지만 푸코는 이렇게 서문에 적고 있다. "우리는 리비에르의 담론을 해석하지 않고, 그것에 어떠한 정신의학적ㆍ정신분석적 주석도 달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텍스트와 리비에르의 수기를 중첩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빨간 눈을 한 이 존속살해범에게 정복당하고 만 것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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