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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어는 외국어 아닌 세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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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어는 외국어 아닌 세계어

입력
2008.11.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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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 영어열풍 속에서 우리가 짚고 나갈 점은 우리 생활에서의 영어의 역할이다.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어(global language)로서 존재하고 있다. 비영어권 국가로 여행을 해봤던 사람들은 누구나 지역언어를 구사하지 못해 불편한 것보다 영어를 못해 불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공항과 관광지는 지역언어와 영어로만 표시되어 있다. 지역언어는 자국민을 위한 것이고, 영어는 그 외의 사람들을 위한 언어이다. 많은 나라들은 방문객들에게 지역 언어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방문객이 받는 서비스와 여행의 질은 영어 사용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평소 영어를 쓰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즉 원하는 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답답함과 함께 외국에서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영어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영어는 원어민이 아닌 비영어권 사람들끼리의 대화 매개체로 널리 사용되고, 영어 사용능력이 비영어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영어 원어민의 발음과 언어능력을 습득하고, 영어권 문화습득을 목표로 하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개념의 영어교육은 EGL(English as a global language)로 빨리 바꿔야 한다. EGL교육의 목표는 원어민과 같은 발음이 아니라, 비영어권자와의 대화 이해에 불편이 없을 수준의 발음이다. 영어 원어민 문화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비영어권 사람들과의 문화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위한 실질적 전략을 익히는 것이다.

현재 많은 비영어권 나라들은 국제적 언어능력을 갖춘 사람을 키우는 것으로 교육목표를 정하고, 자국민을 이중언어 구사자(Bilingual Person)로 키우기 위해 빠르게 영어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있다. 자국어의 읽고 쓰기 능력만큼 영어의 읽기 쓰기 능력을 초등과정부터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등 영어교육과정의 수업시간과 실시 시기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2010년부터 수업시간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얼마나 늘리고, 그 시기를 1학년으로 할 것이냐 아니냐 이전에 영어역할을 어떻게 규정할까 정하고, 일관성 있는 영어교육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초등 영어교육과정의 연 38시간, 3~6학년 4년 동안 500단어 익히기 등을 보면 그 목표가 세계어로서의 영어능력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외국어로서 영어를 경험해 보는 언어체험이 목표임을 알 수 있다. 1997년 정부가 처음 초등과정에 영어를 도입했을 때, 반대한 많은 사람들의 논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야 할 만큼 영어가 필요한 직업을 갖겠냐는 것이었다. 역시 영어를 외국어로 본 발상이다. 이런 시각은 정부가 초등 영어교육과정을 강도 있게 밀어 붙이지 못하게 하는 족쇄 역할을 하였다.

초등교육이 시작된 지 11년, 한 해 국민 4명 중 1명이 해외여행을 가는 시대다. 영어를 미국이나 영국 언어로 보고 외국어 화자로서 원어민보다 열등한 관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이다.

정숙경 서울디지털대 영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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