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올라탄 택시. 급한 사정을 아는지 기사가 차선을 자주 바꾼다. 그러길 20분 여. 교통정체가 풀리자 기사에게 '급한 사정'이 생겼다. "죄송한데, 가스충전소에 잠깐 들르면 안될까요. 좀 급해서…."10여분 정도 우회하는 만큼의 요금을 빼주겠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도 했다. 안도의 숨을 쉬며 운전석에 오르는 기사. "일하실 때 '볼 일'은 어떻게 해결하세요?""차 세우고 일을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몇 안돼요. 결국 기사식당, 가스충전손데, 볼 일이 때와 장소를 가리나요? 참는 수밖에요."
▦공중화장실의 수적ㆍ질적 업그레이드는 언제나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이뤄졌다. 시민불편 해소보다는 외국인들이 겪을 불편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을 예방하려는 이유가 더 컸다. 2000년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아셈), 2001년 한국 방문의 해, 2002년 한일 월드컵 행사 때마다 공중화장실을 세우고 단장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런 과정 등을 거쳐 현재 서울에 는 공중화장실 515개와 빌딩주 등의 협조를 얻어 운영 중인 개방화장실 778개가 있다. 하지만 청계천변을 걸어본 시민이라면 다 안다. 급히 달려간 빌딩 내 화장실은 대부분 '출입 불가'라는 것을….
▦문제는 청결한 화장실 이용에 대한 시민의식과 문화의 부재다. 안국동 로터리 인사동 입구에 무인 유료화장실이 있다. '유료니까 깨끗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전을 넣고 들어서면 악취에 오물에…목불인견(目不忍見) 상황이 눈과 코를 자극한다. 관리인이 청소를 하지만 역부족이다.
지하철 역사 내 공중화장실도 사정은 마찬가지. 바닥은 언제나 물에 젖어 있고, 악취를 피해 피우는 건지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갑고 속이 메스껍다. 한 시민단체가 붙인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표어를 무색케 하는 장면도 많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위생의 해'. 22일은 지난해 우리나라 주도로 66개국이 참여해 발족한 세계화장실협회가 정한 '세계 화장실의 날'이다. 협회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40%인 25억 명이 화장실 없이 살고, 그 영향으로 연간 2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에 걸려 숨지고 있다.
또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볼 일을 본 뒤 종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협회는 그런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위생적인 화장실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모쪼록 우리 사회에 공중화장실을 제 집 화장실처럼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돼 위생 화장실과 함께 수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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