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들어가면 모든 책이 있다'?
그런 광고문을 결코 믿지 않을뿐더러, 적어도 내 저술작업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민속학, 인류학, 민족학 등의 이름이 붙은 학문은 대개 현장에서 생산된 자료들이 중요하다. 현장 냄새가 나는 자료들은 아마존 같은 곳에서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미크로네시아 폰페이를 방문했을 때의 일. 명색이 미크로연방의 수도인데 아무리 섬이 작다지만 서점이 없다. 시골 초등학교만한 크기의 미크로네시아대학을 찾아갔더니 찾고자 하는 책이 겨우 몇 권 눈에 들어오는데 웬 책값은 그리 비싼지. 때로는 이웃 호텔의 로비에서 팔고 있는 몇가지 여행책자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온 섬을 돌아다니며 혹시나 책을 팔고 있나 살피면서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이래서 나의 외국 나들이는 책과의 전쟁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최종적인 괴로움은 책 운반. 한 섬을 갔다가 바로 돌아올 때는 문제가 없으나 여러 섬을 거칠 때마다 책은 늘어나고 여행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태평양 적도 한복판의 우체국에서 책을 부친다고? 우체국도 변변치 않거니와 배송료가 상상을 초월하며, 온갖 노력하여 사들인 자료들이 안전하게 제 시간 내에 한국으로 당도한다는 보장도 없다. 최선은 그저 지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금년에 펴낸 <적도의 침묵> 같은 책자는 대개 이같은 노정 속에서 태어난 작업들이다. 책 이야기를 하려다가 책 구하는 이야기만 늘어놓은 폭이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달러, 유로, 엔화 등이 올랐으니 3권 사던 것 2권밖에 살수가 없다. 경제살림의 어려움은 이처럼 인문학자의 책값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 학자에게 책은 곧 양식이기도 한데, 뾰족한 방도가 달리 없다. 그 핑계 대고 책을 사들이지 않는다? 책쓰기와 독서가 직업이자 유일한 취미일수도 있는 처지에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라살림이 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적도의>
주강현 ㆍ국립 제주대 석좌교수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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