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차기 미 정부를 이끌 고위직 인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서실장 물망에도 올랐던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대표가 보건후생장관에 내정된 것을 비롯해 재닛 나폴리타노 애리조나 주지사가 국토안보부장관에, 시카고에서 여성기업가로 활동해온 페니 프리츠커가 상무부장관에 임명될 것으로 19일(현지시간)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낸 에릭 홀더는 법무장관 낙점이 확실시되고 있고, 초미의 관심사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국무장관 기용도 검증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언론들은 클린턴 부부가 인수위의 검증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추수감사절(27일) 이전에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정권은 클린턴 3기 비판론 고조
백악관과 내각의 진용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클린턴 정부 때 인물들이 지나치게 중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 그레그 크레이그 법률고문, 론 클레인 부통령 비서실장 등이 대표적인 클린턴 사단이고, 내각에서도 홀더 전 법무차관,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런스 서머스, 로버트 루빈 역시 클린턴 정부가 낳은 스타들이다.
인수위에서도 국무 국방 재무 등 핵심 부서는 클린턴 정부 때 요직을 차지했던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어 앞으로 백악관이나 내각에 중용될 '클린턴 사단'은 더 늘어날 수 있다.
CNN 방송은 "지금까지 드러난 인수위나 주요 포스트의 절반 이상이 클린턴 정부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며 클린턴에 치우친 인선이 오바마가 주창한 '변화'인지에 의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비판은 공화당은 물론, 진보주의 진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인 레슬리 산체스는 "오바마 당선자가 클린턴 정부 때의 당파적 인사들로 짜맞추기를 하고 있다"며 "오바마는 인선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주의 성향의 평론가이자 '오바마의 도전'의 저자인 로버트 커트너는 "클린턴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만이 능력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선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클린턴 정부 이전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 것은 1976년 지미 카터 정권이 마지막인데, 이 때 인물들은 너무 나이가 많아 중용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클린턴 정부를 빼고 국정운영의 경험을 가진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클린턴 정부의 법률보좌관이었던 래니 데이비스 변호사는 "전정한 변화는 정책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며 "이런 논란은 경제와 일자리 등을 걱정하는 미국 국민에게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힐러리 국무장관' 카드는 양날의 칼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세운 '윌리엄 J 클린턴' 재단에 거액을 낸 주요 기부자와 자신의 강연료 내역, 재단의 활동 등에 대한 자료를 인수위측에 넘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CNN 등이 19일 보도했다. 클린턴 부부의 재단 활동이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과 '이해의 충돌'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힐러리의 국무장관 기용에 앞서 재단활동을 검증해야 한다는 인수위측의 요구를 클린턴이 받아들인 것이다.
클린턴 재단은 지난 한해 기부금으로 8,1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중 상당액은 외국에서 출연된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클린턴은 또 '힐러리 국무장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재단의 일상업무에서도 손을 뗄 수 있다는 의사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들은 아내를 국무장관으로 만들려는 남편 클린턴의 적극적인 '외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국무장관'은 힐러리, 오바마 모두에게 어려운 선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클린턴 재단의 모든 영업비밀을 송두리째 오바마 손에 넘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며 "차기를 노리는 힐러리가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힐러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링컨의 통합의 정치'라는 측면도 있지만 라이벌을 가둬두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에게 필요한 국무부 1인자는 자신의 외교정책을 이행할 외교관이지 자신에게 국제관계를 가르치려는 멘토가 아니다"라며 "클린턴의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힐러리 카드는 새 정부, 새 대통령에게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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