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고위당정협의회가 끝난 뒤 삼청동 총리공관을 나서던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가 긴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참, 고약하게 만들어 놓았어."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이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고됐던 이날 고위당정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한나라당이 야당과 협의해 최종안을 마련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어정쩡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게 여권이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상의 결론일 수도 있다.
종부세 개정안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은 정부안이다. 과세기준은 9억원, 세율은 0.5~1%, 감면을 위한 1주택 장기보유 기준은 3년이다. 이렇게 되면 종부세는 거의 없는 셈이 된다. 민주당안은 그 반대다. 과세기준 6억원, 세율은 1~3%로 현행유지다. 장기보유 기준은 10년 이상 거주이고, 그것도 15억원 이상 주택은 제외된다.
한나라당으로선 지지층을 생각하면 정부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서민들과 지방민심의 눈이 두렵다. 여당이 종부세 완화에 앞장서는 것으로 비치는 순간, 민심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서민은 죽어나는데 부자 감세만 신경 쓰느냐"는 비난이 벌써 봇물을 이룬다.
당 지도부는 지난 17일 정부안과 야당안의 중간에서 일단 절충점을 잡아뒀다. 과세기준을 6억원으로 하되 1주택 단독명의자에 한해 기본공제 3억원을 주고, 세율은 정부안보다는 높고 현행(야당안)보다는 낮은 선. 장기보유 기준도 8년. 그나마 어렵게 이른 절충점이다. 그 지점을 찾느라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얼굴에서는 딜레마의 고민이 읽힌다. 서울 강남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요즘 "삭발단식을 해서라도 종부세를 없애라"는 민원에 시달린다고 울상이다.
지방이나 강북 출신들은 그 반대다. 한 영남 의원은"지역에 가면'종부세 좀 내봤으면 좋겠다'는 비아냥에 '요즘이 종부세나 타령할 때냐'는 질타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했다.
이리 가도 욕먹고 저리 가도 비판 받는 처지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지방에 내려보내는 종부세 구조가 한나라당을 얽어맨 것이다."한나라당이 노무현이 설치한 '트랩'에 빠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으로선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길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다. "야당과 협의해 처리한다"는 당정 결론이 나온 이유다. 과연 한나라당이 종부세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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