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들 간의 협의와 무관하게 무조건 본처가 낳은 장남 즉, 적장자(嫡長子)에게 제사(祭祀) 주재권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원은 제사 주재권은 상속인들 간에 협의로 정하되, 협의가 안될 경우 적자(嫡子)와 서자(庶子) 구별 없이 장남에게 우선권이 있고, 아들이 없을 때에는 장녀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놓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0일 최모(59)씨가 이복동생 등을 상대로 “사망한 아버지의 유체ㆍ유골을 선산에 모실 수 있도록 돌려달라”며 낸 유체 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의 아버지는 본처와 사이에 3남3녀를 뒀으나 집을 나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1남2녀를 두고 44년을 함께 살다 2006년 숨졌다. 최씨의 이복동생들이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유해를 경기 모 공원에 매장하자 최씨가 소송을 냈다. 1, 2심은 “유체ㆍ유골의 소유권은 민법에 따라 제사 주재자에게 있고 관습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손에게 제사 주재자의 지위가 인정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1,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최씨가 본처가 낳은 적자이고 장남이기 때문에 최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도 최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유는 달랐다. 대법원은 “유체ㆍ유골은 민법상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제사 주재자인 장남 최씨에게 승계돼야 한다”며 적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장남이기 때문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하던 종래의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로 이루어진 협의결과를 무시하는 것이고, 적서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오늘날의 가족제도에 부합하지 않아 더 이상 관습법으로서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남녀간ㆍ상속인간의 평등에 위배된다”며 장남 우선권에 반대의견을 내고, 상속인간 다수결로 정하거나 사안에 따라 법원이 지정해주는 방식이 되야 한다고 밝혔다. 안대희, 양창수 대법관은 “법률이 규정하지 않은 제사 주재자를 법원이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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