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萬)'의 의미는 특별하다. 시간과 노력, 환희와 시련이 '만'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래서 '만'은 '만(滿)'과도 의미가 통한다. 더 이상 모자랄 것 없는, 풍족의 경지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34ㆍ207㎝ㆍKCC)이 프로통산 정규시즌 1만 득점 고지를 정복했다. 이전까지 아무도 발자국을 새기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용병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부대껴야 하는 센터 겸 포워드. 악전고투가 일상인 최전방에서 올린 개가라 더욱 값지다.
■ 설렁설렁? 용납 못 한다
서장훈은 데뷔(98~99시즌ㆍSK) 후 소화한 500여 경기 중 '대충' 뛴 경기는 한 게임도 없다고 했다. "시즌 막판 순위가 결정된 후라도,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쉬엄쉬엄'이라는 건 성격상 용납이 안 돼요."
"지금까지 뛴 모든 게임,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는 그의 말처럼 11시즌 만에 1만점을 돌파한 비결은 그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완벽주의에 있다. 서장훈의 용인 마북리 숙소는 여자 방처럼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책상 위 먼지 하나, 이불의 주름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동료들의 방은 청소 도우미가 치우지만, 서장훈의 방은 '노 터치'다.
서장훈은 "깔끔을 떠는 건 일종의 징크스다. 주변이 깨끗하지 못하면 게임도 안 풀릴 것만 같다"고 했다. 휴식일, 두문불출 침대를 지키며 책, 영화 보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농구를 첫 번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쉴 때는 최대한 몸을 안 움직여야 돼요. 100% 컨디션으로 출전해야 하거든요."
■ 은퇴? 아직 멀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 다섯. 3년 선배인 조성원은 여자농구 감독을 맡고 있고, 1년 선배 전희철은 최근 2군 감독이 됐다. 2010~11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서장훈도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됐다.
하지만 서장훈은 "은퇴 후 계획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많지 않다"고 했다. 오로지 다음 게임, 올시즌 성적이 그의 관심사다. 다만 서장훈은 "은퇴와 관련해 유일한 목표라면 지금의 평균득점, 리바운드 개수를 유지하며 코트를 떠나는 것"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프로에 발을 디딘 지도 올해로 11년. 새까만 후배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를 법하다. "아직 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한 발짝 물러난 서장훈은 "우리는 농구가 직업인 사람들이다. 프로선수로서 책임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를 즐기면서 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직업인 이상 코트는 언제나 전쟁터입니다."
■ 결혼? 농구와 결혼한 건 아니다
코트에 서면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서장훈이지만 결혼 얘기만 꺼내면 한없이 작아진다. 아직까지 장가를 못 간 건 혹시 농구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어서 아닐까. 서장훈은 "농구와 결혼했다거나 이런 건 절대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왜 못 했는진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시간도 없고, 아직까지 좋은 짝을 못 만난 때문이겠지요."
상이라는 상은 받을 만큼 다 받았고, 우승도 두 차례(2000년 SK, 2006년 삼성)나 경험한 서장훈에게 마지막 남은 목표는 결혼인 셈이다. "농구와 달리 의지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죽기살기로 노력해야겠지요?"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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