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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시료 채취 논란… 모호한 구두합의가 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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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시료 채취 논란… 모호한 구두합의가 빌미

입력
2008.11.2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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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검증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 검증 과정의 핵심 척도인 시료 채취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 "합의한 적 없다"고 맞서면서 혼란만 커지는 상황이다. '진실게임'의 진실은 무엇일까.

문제의 발단은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6자는 북핵 신고서 검증 원칙으로 '현장 방문, 문서 확인, 기술자 인터뷰' 등 3가지 방식에 합의했다. 그러나 시료 채취나 미신고 시설 방문은 북한이 완강히 거부해 "기타 조치는 6자회담 참가국 합의로 결정한다"는 정도로 봉합했다.

시료 채취는 북한의 핵개발 정도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영변의 원자로나 재처리시설의 장비나 흙 등에서 시료를 수거해 분석하면 20, 30년 전까지의 원자로 가동 내역과 플루토늄 총 생산량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11일로 예정됐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북한은 14일부터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했고, 이후 추가 조치로 위기를 고조시켰다. 결국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달 1~3일 평양을 방문, 북한과 직접 담판에 나섰고 미 국무부는 같은 달 12일 검증 방식에 "시료 채취(sampling)와 법의학적 분석(forensic activities) 등 과학적 절차 이용이 포함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 외무성이 한 달 뒤인 지난 12일 "검증 방법은 현장 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된다"며 시료 채취 합의를 부인하면서 논란이 재개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19일 "힐 차관보 방북 당시 검증은 '과학적 절차'라는 포괄적 용어로 표현됐는데 이는 시료 채취를 포함한다는 게 미국 측 해석이고, 북한도 이를 양해했기 때문에 미 국무부가 그렇게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며 "그러나 구두 양해였을 뿐이어서 북한이 합의한 적 없다고 발뺌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북핵 협상의 특성 상 모든 쟁점을 명확한 표현으로 담고자 하면 합의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힐 차관보는 그 동안의 관행대로 이중 해석이 가능한 '과학적 절차'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봉합해 북미 양측의 이해를 일치시켰다.

하지만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선 제압 차원에서 "서면 합의 외에 한 글자라도 더 주장하면 주권침해"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시료 채취는 불능화(2단계)가 아닌 핵포기(3단계) 단계에서나 논의할 수 있다"(조선신보 15일자)는 북한의 입장으로 볼 때 당분간 6자회담 공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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